유숙자 有宿者
서울독립영화제2010 (제36회)
본선경쟁(단편)
엄태화 | 2010|Fiction|Color|HD|23min36sec
SYNOPSIS
노숙자 만식, 그는 집이 있다.
여느 때처럼 구걸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그, 스스로 머리를 박박 밀고 목욕을 한다.
잠시 후 만식이 편안히 잠에 빠져들 때쯤
또각또각 어디선가 여자 구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DIRECTING INTENTION
누구나 각자의 보금자리를 찾아 헤맨다.
FESTIVAL & AWARDS
2010 제4회 대단한단편영화제
DIRECTOR

엄태화
2002 <선희야 노올자>
2004 <선인장>
STAFF
연출 엄태화
제작 한정원
각본 엄태화
촬영 이상훈
편집 신서린
조명 정태환
미술 이경인
음향 구본승
출연 엄태구, 박민영
PROGRAM NOTE
집 없는 남자와 집 있는 여자의 기묘한 동거. 남자와 여자는 같은 집에서 산다. 칫솔도 면도기도공유하는 사이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존재를 모르고 남자는 여자 곁에서 유령처럼 배회한다. 남자가 여자의 집에 무단 침입하여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영화는 의뭉스럽게 시작하지만 후반부에 관객의 의표를 찌른다. 시간상으로는 아침에서 늦은밤까지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서사와 액션은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이다. 남자는 아침이되자 현관문을 잠그고 아파트를 나서는데, 그 행색이 평범하지 않다. 남루한 옷차림, 커다란 크로스백, 시각장애인용 지팡이, 검은색 선글라스와 목에 건 카세트는 도를 넘어섰다. 남자의 이미지는 구걸이나 노숙에 가깝다. 재개발을 목전에 둔 것 같은 서민 아파트는 그의 외형과 어울릴 법도 하지만, 집안을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레 걸어 다니는 모습은 어딘가 미심쩍다. 그는행위 예술가처럼 우아하게 행동하다가도 때로는 슬랩스틱 코미디나 마임 배우처럼 웃음을 자극하는 행동을 보여준다. 특히나 여자가 집에 들어오자 남자는 바빠진다. 그는 드러내는 동시에 감춘다. 영화 전체적으로 옷을 벗는 행위와 함께 몸을 숨기는 행위가 묘하게 대구를 이루고있어, 두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 옷을 벗는 행위는 한 인간의 사회적 의미의 제거를,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숨기는 것은 한 인간의 존재론적인 의미의 제거를 상징한다. 남자에게 집은, 살아도 죽은 것처럼 있을 때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아이러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리며, 주거 공급률이 100%가 넘는 나라에서 벌어졌으니, 단순히 웃고 넘길 일은 아니다.영화는 주거문제뿐 아니라 현대인의 우울과 공포를 동시에 이야기한다. 여자의 히스테리컬한말투와 충동에 가까운 행동을 통해 사회적, 계급적 열등감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이 드러난다. 한편 남자는 여자의 뒤집힌 거울 이미지로 긴장되고 위축되어 있다. 이는 공포, 불안, 절망에 가깝다. 결국 남자와 여자는 다르면서도 같다. 유령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나 유령과함께 살아가는 것의 간극은 극소하다. 우리 모두 잠재적으로 유령이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영화는 유령-되기를 보여주는 현대판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이도훈 / 서울독립영화제2010 관객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