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서울독립영화제2009 (제35회)

장률 감독 특별전

장률 | 2008|Fiction|35mm|Color|108min

SYNOPSIS

30년 전, 한국의 작은 소도시인 ‘이리’ 기차역에서 사상초유의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40톤 분량의 다이너마이트를 실은 화차가 폭발한 사건으로
그 뒤 ‘이리’는 익산으로 지명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고
폭발사고는 아무에게도 회자되지 않은 채 잊혀져 가고 있다.

진서는 이리 폭발사고 당시 엄마의 뱃속에서 폭발사고의 미진으로 인해 태어나게 된다. 그 폭발사고로 그녀의 부모는 모두 사망했고, 진서와 태웅 두 남매는 여전히 이 도시에 살고 있다.

삶을 지탱해 나갈수록 남매에게 들이닥치는 삶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태웅에게선 아픔을 가진 진서를 끌어안을 여유도 점차 사라져 간다.

DIRECTING INTENTION

내가 여기서 하려는 것은 한국이라는 생활을 묻어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가 묻어날 것입니다. 그 방법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매 장면 매 순간 자꾸 반성해야지요.

저는 이 도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마음이 내게는 중요합니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각자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기분의 마음이 있습니다. 한국에 오면 폭발하고 난 다음의 황폐함, 그래서 폭발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중경>이 폭발 직전에 있는 사람들과 공간을 찍은 것이라면 <이리>는 이미 폭파되고 잔해만 남은 풍경과 사람을 찍었습니다. 지금 실제 이리에 가보면 도시 외곽은 황폐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 황폐한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죠. 가라앉은 도시의 분위기와 인물의 내면을 찍은 것이 바로 <이리>입니다.

DIRECTOR
장률

장률

2001 < 11세 >
2004 < 당시 >
2005 < 망종 >
2006 < 사실 >
2006 < 경계 >
STAFF

연출 장률
제작 윤병기, 조성규
기획 박진원, 김성태
촬영 김성태
편집 임선경
조명 이준식
사운드 디자인 박상균
동시녹음 손규식
의상 김윤희
분장 김은아
CG/DI 김남식
출연 윤진서, 엄태웅

PROGRAM NOTE

영화의 마지막으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중경>의 쑤이는 이리(익산)라는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된다. 이리역에 도착한 쑤이는 태웅이 운전하는 택시에 몸을 싣는다. 이리에 살고 있는 진서는 중국어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쑤이를 맞이한다. 진서는 중국어 학원에서 조금씩 중국어를 배우면서 그렇게 쑤이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폭발 이후의 도시’ 이리는 <중경>과 조우한다.
30년 전 폭발 사고를 겪은 도시 이리에는 이미 폭발 사고의 기억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리는 익산이라는 새로운 지명으로 바뀌었고, 폭발 사고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이 도시에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지만, 진서가 바라보는 도시는 이리의 기억을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진서가 내려다보는 도시의 모습은 쑤이가 바라보는 중경의 모습과 닮아있다. 소통을 위한 언어도 필요 없다. 옛사랑을 찾아 이리에 온 노인은 경로당 앞 벤치에서 할머니가 된 옛사랑과 만난다. 진서는 박수를 쳐보며 자신의 박수소리는 들리지만, 둘의 대화를 들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서로 사랑의 말을 나누는데 왜 남이 듣게 하겠나’라는 노인의 대답으로 언어는 또 다시 자신의 원래 역할을 잃어버린다.
진서는 30년 전 이리역 폭발 사고 당시 엄마의 뱃속에서 폭발의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진서를 낳다 죽었고, 진서는 택시 기사인 오빠 태웅과 단둘이, 아파트 경로당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순수한 영혼을 가진 진서를 바보 취급하면서 진서의 신체를 아무렇지 않게 유린한다. 진서가 일하는 중국어 학원의 사장은 월급을 주지 않고, 학원에 다니는 학생과 도시의 남자들은 그녀를 강간한다. 진서의 몸은 사람들이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이리라는 도시를 상기시킨다. 그 불편한 진실은 진서의 몸을 통해 드러나려 몸부림치지만, 결국 죽음은 그것을 다시 가려버리고, 태웅이 만들고 있던 하얀 종이 모형의 이리역은 다시 폭발하고 만다.

김수현 (서울독립영화제2009 해외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