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서
서울독립영화제2020 (제46회)
본선 단편경쟁
채의석 | 2020 | Fiction | Color | DCP | 30min 23sec
SYNOPSIS
아침 일찍부터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 민규는, 하지만 사진은 못 찍고 오히려 친구인 가영과 함께 동네를 한 바퀴 돈다.
DIRECTING INTENTION
<정오에서>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영화입니다. 지나친 것은 아니고 지나온 시간입니다.
FESTIVAL & AWARDS
2020 제21회 대구단편영화제
DIRECTOR

채의석
STAFF
연출 채의석
각본 채의석
제작 이영규
촬영 안병호
녹음 권민령
음악 셀린셀리셀리느
사운드 한가영
출연 곽민규, 박가영
PROGRAM NOTE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뜬금없이 생각했다. 민규의 나이 무렵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놓친 적인 있다. 다른 교통편이 있음에도 몇천 원을 더 내면 몇 분 후 출발하는 다른 열차를 탈 수 있음에도, 나는 굳이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렸다. 그때는 어느 날 눈을 뜨면 무궁화호 열차가 영원히 사라져 있을 것만 같았다. 뭐 어쨌든,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시간을 놓친 건지, 아니면 내가 놓은 건지 모를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낯익어서 대수롭지 않았을 역전을 배회했을 것이고 이내 잊힐 낯선 얼굴을 흘깃거렸을 것이다. 맞다, 나는 민규와 가영이 김포 향교에서 나눴던 대화처럼 지루했을 것이고, 나른했을 것이고, 지긋지긋했을 것이고, 답답했을 것이다. 서울 이곳도, 내가 돌아가야 할 집도 아닌,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 버리면 혹시나 잃어버린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지 않을까 싶어 낯선 역 이름을 천천히 훑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는 내 마음이 왜 그랬는지 정말 몰랐다. 좋은 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한다면…… 리모컨을 들고 나른하게 아니 무기력하게 사진관 쪽방 문턱에 걸터앉아 TV를 보는 가영이나, 제대 후 민규가 마주하게 되는 가영의 포즈와 너무도 닮은 모습으로 TV를 보는 치킨집 사장을 마주하는 순간처럼. 그러니까 문득, 내게는 대수롭지 않았던 역전의 기다림의 순간들이, 그렇게 그날의 잊힌 시간들이 뒤늦게, 느닷없이 쏟아져 소환의 순간을 마주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닐까. <정오에서>는 직접 손으로 오래오래 빚고 빚은 것처럼 손때와 체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만들고 잃어버린 시간에게 안부를 묻게 한다.
김중현 / 서울독립영화제2020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