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

서울독립영화제2009 (제35회)

단편애니메이션초청

조태희 | 2009|Fiction|Color|HD|9min 23sec

SYNOPSIS

수진은 헤어진 연인의 집에 찾아온다. 집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은 채 입구에 서서 수진은 자신의 심경고백을 한다. 어쩌면 그것은 마치 상대방에게 얘기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정리하여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함께 했던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마치 지금 눈 앞에 생생하게 보이듯 섬세한 감정들은 그녀만의 아름다운 표현으로 말을 이어가는 수진.

FESTIVAL & AWARDS

프리미어

DIRECTOR
조태희

조태희

2005 < 라르고 >
2009 < 지원아! >

STAFF

연출 조태희
제작 조태희
각본 조태희
촬영 노승보
출연 이가흔

PROGRAM NOTE

순간은 영원하다. 아름다운 순간일수록 오래도록 기억되는 법. <조율>은 사랑의 마지막 순간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한 폭의 그림 같은 영화다. 한 여자가 이별을 말한다. 눈물도 없이 담담한 표정에 살며시 퍼지는 미소까지. 이별을 말하는 여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을 체득한 표정이랄까. <조율>은 통속소설에서 익히 등장하는 이별의 순간을 단순하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핵심은 단순함에 있다. 원 씬 원 컷에, 장소 이동도 없다. 9분 동안 계속 이어지는 독백은, 일면 연극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 여자의 말은 모놀로그가 아니라 대화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가 상대방의 존재와 그의 초조한 심리를 대변한다. 영화에 이별이라는 단어는 없다. 다만 회상은 있다. 여자는 차분히 입을 연다. 그녀가 말하는 과거는 서사 구조를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 조각 조각난 이미지들이다. 끈적한 여름, 건반이 망가진 피아노, <시네마 천국>의 메인테마, 첫사랑을 나눴던 날 애인의 얼굴, 빗방울과 낙엽들까지. 이미지의 단편들이 모여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직조해낸다. 이 때 카메라는 좌불안석하는 두 사람의 행동을 묘사하는 양 떨린다. 여자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만 시선을 아래로, 옆으로 돌린다. 한 컷으로 이루어진 간결한 영화임에도 변화의 순간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사건은 하나지만 시간은 흐르고 주변공기와 빛은 변한다. 카메라는 빛의 변화나 인물들의 행동 변화를 부단히 좇는다. 특히 영화에서 빛을 활용하는 테크닉은 탁월하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면서 실내는 붉은 색에서 짙은 녹색 계열로 바뀐다. 카메라는 화면의 밝기를 조정하기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갑작스레 빛이 쏟아지는 순간에, 여자는 마치 베르메르의 회화에 나오는 소녀처럼 빛을 온몸에 머금고 후광을 낸다. 아마도 이때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고, 또 오래 기억되는 순간일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만 했던 순간, 그 영롱한 사랑의 기록이다.

이도훈/서울독립영화제2009 관객심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