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생들
서울독립영화제2012 (제38회)
본선경쟁(단편)
백승화 | 2012 | Fiction | Color | HD | 36min 30sec
SYNOPSIS
20대의 마지막 해를 얼렁뚱땅 보내고 있던 만화가 지망생 효길은 하는 일 없이 어머니의 문방구에서 빈둥거리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고교 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지환의 악보가 담긴 의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 효길은 그 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멤버이자 지금은 모교의 선생이 된 명재와 함께 악보에 담긴 음악을 연주해 보고자 한다. 모교의 밴드부실을 찾아가면서 둘은 문득 잊고 지냈던 과거의 기억들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DIRECTING INTENTION
고교 시절 저는 항상 지각을 하면서도 지각생들은 조금씩 늦을 뿐이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든 지금도 그저 조금 늦을 뿐이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고교 시절 있었던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FESTIVAL & AWARDS
2012 제5회 상상마당음악영화제
2012 제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DIRECTOR

백승화
2006 <잘자, 좋은 꿈 꿔>
STAFF
연출 백승화
제작 박정원
각본 백승화
촬영 이성중
편집 백승화
조명 류시문
음악 김대인
미술 박옥경
출연 백수장, 정대훈, 김창환
PROGRAM NOTE
어느 날 갑자기 죽은 이가 귀환하고 그로 인해 살아남은 자들은 과거로 소환된다. 기억의 의무에 응답해 과거와 마주한 이들은 그 여행의 끝에서 현재를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 돌아온다. <지각생들>은 이러한 회고담 영화의 구조를 공유한다. 20대의 끝자락에 놓인 효길과 명재는 어느 날 갑자기 죽은 친구 지환의 유품이 담긴 의문의 편지를 받고 의식의 저편으로 봉인시켰던 고교 시절의 기억들과 다시 조우한다. 효길과 명재, 지환의 고교 시절은 그저 음악이 좋아서 밴드를 하고 음악을 하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부풀어 오르던 시절이다. <지각생들>에서 소환되는 과거(아마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이 있었던 1999년)는 아이돌과 팬덤, 청춘 남녀의 상큼한 연애담을 추억하는 <응답하라 1997>의 화려함과는 다르다. 그들의 청춘의 꿈은 쾨쾨한 냄새와 두텁게 눌러앉은 먼지, 자욱한 담배 연기로 가득한 허름한 어느 호프집에서 누런 연습장에 꾹꾹 눌러 써진다. 그리고 그 어두운 공간에서 끝끝내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아무도 모르게 외롭게 산화한다. 두 친구는 살아남지만 꿈이 사라진 그들의 현재는 멍하고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머니 문방구에서 빈둥대는 효길의 만화가 지망생으로서의 삶은 지지부진하고, 고교 시절 풋풋하고 상큼했던 명재의 연애는 이제 김빠진 음료수처럼 텁텁하고 무미건조해져서 언제 끝나도 상관없을 것만 같다. 과연 고교 시절로의 여행은 그들의 무기력한 현재를 뒤바꿀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되어 줄까? <지각생들>은 여느 회고담 영화들처럼 막막한 현재에 갇혀 있는 인물들을 다시 붙잡아 세워 심기일전하도록 닦달하지 않는다. 불현듯 마주한 그때 그 시절의 순수함과 열정이, 추억과 기억이 순간 달콤하겠지만, 결국엔 어떤 활력도 깨달음도 찾지 못하고 다시 막막한 현재의 상황에 무력하게 몸을 묻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떤가. 그런다고 강박적이 되거나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늦게 간다고 잘못 가는 것은 아니니까. 영화 속 마지막 지환의 대사처럼 지금의 우리들을 이렇게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말이 또 있을까?
장훈/서울독립영화제2012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