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서울독립영화제2004 (제30회)
독립장편특별전
고은기 | 2004 | Fiction | HD | Color | 114min
SYNOPSIS
곧게 뻗은 길을 바라보며 꿈꾸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꿈꾸는 자는 언제나 길 위에서 성찰한다. 삶이란 곧 길 위에서 불온한 것들에 대한 몸부림이며 흔들리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길을 선택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곧 자신의 존재를 찾아 떠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삶의 진행이며 행복인 것이다.
DIRECTING INTENTION
1963년 프랑스에 그 당시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전통적이라 할 수 있는 “살롱전”에 반발한 “낙선전”에 전시된 작품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다. 목욕하는 두 명의 나체 여인과 현대적 정장을 한 신사 두 명이 어느 숲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그 당시에 상당한 충격과 파장으로 스캔들을 일으킨 도발적 작품이다. 그 당시 화풍과 전통적 개념의 사고로는 용납될 수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풀밭 위의 식사”는 혁명성과 도발성과 새로운 개념의 사고로 근대회화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다. 단순히 이 작품이 주는 의미가 외설성과 도발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그 당시 주류 화풍인 인상주의에 대한 강한 반동으로 인상주의가 무시한 사물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관심을 보인 새로운 화풍의 태동에 있는 것이다.
1963년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와 같은 출발점을 바라보며,
2004년에도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감성으로 본질과 근원적 관심에, 그 기획의도가 있다.
DIRECTOR
고은기
STAFF
연 출 고은기
제 작 NCN
각본 고은기, 조성수
출연 사현진, 김정민
PROGRAM NOTE
<액체들>, <완전변태>, <챠오> 등에서 환상적인 로맨티시즘의 세계를 구축했던 고은기 감독이 상업영화 <뚫어야 산다>의 외도 이후 다시 독립영화계로 돌아왔다. HD로 제작된 장편영화 <풀밭 위의 식사>는 제목이 환기시키는 마네의 그림만큼이나 파격적이고 도발적이다. 파격과 도발의 대상은 단단하게 짜인 드라마투르기나 전형성에 구획된 인물, 통속적인 사랑과 인생의 뚜렷한 목표다. 악기 수리공인 알렉스와 아버지를 불태워 죽인 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빨강,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이 두 남녀는 이 모든 도식들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다. 아버지를 찾으려는 알렉스의 욕망이 이들의 여행 동기이긴 하지만 그들의 분방한 행로를 구속하지는 않는다.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찰나적인 아름다움, 불현듯이 밀려오는 허무감,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갈구, 무한한 탈주와 상상, 불온한 것들에 대한 동경 등이 이들의 꿈을 이룬다. 길은 그 꿈들이 펼쳐지는 무대이고, 감독은 이 무대에 몽환적인 판타지와 시적인 풍경화를 그려낸다. HD 카메라의 높은 해상도는 이 종잡을 수 없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잡아내면서 화면을 감각적 스타일로 채색한다. 아마 관객들은 특별한 심리적 동기화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줄곧 ‘…하고 싶어’를 외치면서 ‘순수함과 엽기성’을 추구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과 비, 평원과 바다, 환한 벚꽃 동산과 황량한 길을 넘나드는 인물들의 내면적 여행은 자못 강렬한 데가 있다.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사물의 호흡들을 예민하게 반추하는 빨강의 고백처럼 말이다. 삶에 대한 다양한 정감들을 때로는 진지하고 무겁게, 때로는 풍경과 환상으로써 여유롭게 펼쳐 보이는 감독의 주관적?추상적 언어가 관객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체현되는가는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고은기 감독의 전작이 탐구한 이미지와 서사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장편 극영화로 연장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김지훈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