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것들
서울독립영화제2009 (제35회)
본선경쟁(단편)
김현성 | 2009|Fiction|Color|35mm|16min 40sec
SYNOPSIS
곧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인수는 낡은 사회과학 헌책방과 감당할 수 없는 빚만을 남긴 채 사라진 아버지 덕에 하루하루 빚 독촉을 받으며 살아간다. 겨우겨우 버텨 내던 인수는 아버지와의 애증의 인연 마저 끊으려 하던 중 아버지의 죽음의 소식을 듣는다.
DIRECTING INTENTION
깃발을 잃고 유령이 되어간다.
FESTIVAL & AWARDS
2009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DIRECTOR

김현성
2005 < 어떤 상실 >
2008 <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
STAFF
연출 김현성
제작 김영민
각본 김현성
촬영 최민호
편집 김현성
조명 이우승
미술 김윤희
음향 김원, 이주석
출연 안성일, 주인영, 백진철
PROGRAM NOTE
"나란히 앉아 깃발을 만들어주던 아버지는 낡은 헌책방과 감당할 수 없는 빚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 <흩날리는 것들> 오프닝 중.
남자는 측량기사이다. ‘호적판 지 오래된’ 남자의 아버지는 찜질방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그 날 이후, 남자는 채권추심원의 집요한 빚 독촉과 상속 권유에 부딪힌다. 남자가 상속을 받아들이면 빚도 상속받고 보험금도 상속받는다. 남자는 채권추심원을 내쳐보지만 사실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그에겐 달리 선택이 없다. 아버지가 남긴 헌책방의 사회과학 서적을 뒤적여봤자 아내와의 삶에 보탤만한 것은 없고 책방 벽에 붙은 맑스의 흑백 사진 만큼이나 효용성이 떨어지는 유산이다. ‘아버지처럼 빈 손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남자는 상속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룬다.
깃발은 남자의 직업상 늘 마주하는 것이다. 빨간 깃발은 그의 측량기의 렌즈 안에서 무심하게 펄럭이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것은 남자에게(혹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어두운 헌책방 안에 남자가 홀로 앉아 있을 때 바람은 끊임없이 낡은 창문을 두들겨대고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는 아버지의 책방을 더욱 기괴하게 만든다. 사회과학 서적을 불태우는 그의 귀에 바람소리는 깃발소리가 되어 들리고 그것은 곧 아버지의 존재와 동일시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는 산 중에서 다시금 환청처럼 들리는 깃발소리는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지폐 다발의 펄럭거리는 소리와 겹쳐지지만 그는 끝내 저 높은 곳에서 빨간 깃발을 확인하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영화의 영문 제목인 ‘새로운 세상의 유령들Specters of The New World’은 무엇일까.
남자의 외부에서 덜그럭거리며 두들기고 흔들리고 불어대고 집요하게 쫓아오며 그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란히 앉아 깃발을 만들어주던 아버지는 곁에 없고, 이제는 측량기 안에서만 무심히 펄럭이는 깃발, 보험금을 통해서야 아버지의 효용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부지영/서울독립영화제2009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