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08 예심총평


서울독립영화제2008 예심총평

서울독립영화제2008은 금번 예심을 통해 또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독립영화의 자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8월4일~9월10일 38일간의 공모기간을 통해 단편 578편 장편 45편 총623편의 작품이 출품되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참여로 장편은 지난해 보다 7편 증가하여 주목을 끌었습니다. 양적인 확대뿐만 아니라 작품들의 완성도도 더욱 향상되었습니다. 그러나 반가운 현실은 역설적으로 일정정도의 작품만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서울독립영화제의 한계를 체감하게 하였습니다. 한 달여 넘는 예심기간 동안 6인의 예심위원들은 무엇보다 작품이 고유하게 간직하고 있는 장점을 인정하는 소중한 시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연출의 완성도를 뛰어넘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려 했는지 주목하였습니다. 그렇게 작품을 둘러싼 치열한 논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쳐 서울독립영화제2008은 단편 40편, 장편 11편 총 51편의 본선경쟁작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08은 슬로건으로 ‘상상의 휘모리’를 채택한 만큼, 날카로운 시대정신과 실험정신으로 영화의 가능성을 넓혀 왔던 독립영화의 상상력에 주목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독립영화의 지향은 이번에 출품된 다수의 작품에서도 발견되었고, 이는 기성영화에서 접할 수 없는 독립영화만의 쾌감을 유감없이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많은 작품들이 최근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듯 소수자, 여성, 노인, 실업, 노동의 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 국한된 문제와 이미지를 넘어서서 다민족화되어가는 우리의 현실과 다른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이미지들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더 이상 삶의 터전이기를 포기한 도시의 이미지가 그 어느때보다 많이 포착되었습니다. 철거촌, 가난한 달동네, 도시 하층민들의 삶이 담긴 작품들은 차갑고 건조하게 냉혹한 도시를 고발하거나 또는 따뜻한 인간애로 승화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재의 사회성에 비해 영화가 문제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에 그치거나 비현실적인 결말로 마무리 되는 듯 했습니다. 기성 영화의 패턴을 축소하여 보여주거나, 다소 과장된 정서와 설정에 기댄 작품들은 독립영화의 상상을 자극하기에 조금 아쉽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또한 일상의 미시적 문제에 천착하거나, 감성적 정서에 기댄 멜로 영화들이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에, 그러한 작품들이 담고 있는 섬세한 가능성이 동반 희석되는 듯 했습니다.

작품들이 품고 있는 전반적 에너지 속에서 40편의 단편들이 확정되었고, 단편부문은 실로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는 주제들을 품고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리라 믿습니다. 앞서 말했던 도시의 이미지는 극, 실험,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장르의 특성과 경계를 뛰어넘어 전반적으로 공유되고 있습니다.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노동자, 노인, 여성, 아동 또는 찌질한 청춘으로 등장하며 처절한 리얼리즘으로 혹은 유쾌한 상상력과 실험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사회적 이슈를 극화한 몇몇 주목할 만한 작품들의 발견은 관객들에게 잘 알고 있는 문제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선사할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그 어느때보다 많은 작품들이 출품되었던 장편부문은 예년에 비해 월등히 좋아진 감독들의 작품세계에 놀라움과 동시에 예심의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강세였던 장편부문이 올해는 극영화의 우세로 귀결되었습니다. 독립장편부문은 몇 해 동안 꾸준한 성장을 계속했지만, 표현과 형식에 진부함으로 비평의 도마에 오르곤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독립영화제2008의 장편은 이를 불식시킬 만큼 크게 도약하였음을 확신합니다. 7편의 장편극영화는 자본주의가 소외시킨 인간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에 기댄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내러티브와 서사에 충실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있는 반면, 사회가 원하는 규격에서 배제되어 있기에, 소수자로서 오해를 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거칠고 강한 사유와 성찰이 충돌하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는 장편극영화의 우세에 올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습니다. 그러나 상영되는 4편의 작품들은 올해의 다큐멘터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민감한 이슈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2편의 다큐멘터리는 언제나처럼 용기있는 발언에 전제한 다큐멘터리의 진지한 실천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소수자의 고민을 가감없이 드러낸 작품과 사적 방식으로 인간 영혼의 교감을 다루고 있는 작품은 우리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정서를 일깨워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시기적으로 한 해에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화제로, 지난 1년간 만들어진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불러 모은다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서울독립영화제 부여된 일반화된 프레임에 불과합니다. 세상과의 소통을 열망하는 독립영화들은 치열한 고민과 유쾌한 상상력으로 너무도 많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08 본선 경쟁 부문에서 만날 51편의 작품들은 그 일부일 것입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08에서 만나 뵙게 될 감독님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하며, 비록 함께 하지는 못하지는 한편의 소중한 영화를 탄생시킨 더 많은 감독님들의 노고와 열정에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감독님들의 식지 않은 창작 열기를 뜨겁게 응원하고자 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 2008 예심위원
–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장)
– 김태일(다큐멘터리 감독)
– 맹수진(영화평론가)
– 박광수(정동진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 강릉씨네마떼끄 사무국장)
– 이지연(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 조영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