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심사평
2011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었던 작품은 장․단편을 아울러 총 48편이었습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등이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는 올해의 작품들은 한국사회의 지난했던 올 한 해 만큼이나 격렬하고 다양한 혁신과 사회적 이슈를 담은 영화들로 채워졌습니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와 실험적 경향을 보이는 작품들 중 상당수는 용산과 재개발 문제, 제주도 4.3과 한미관계 등 역사적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대면하고 그 이슈를 현재화하는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극영화 부문 역시 이러한 시대적 초상을 반영하듯 개인의 내면과 주변의 환경을 진지하고 솔직하게 담아내는 영화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러한 영화들은 모두 주제적 차원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차원에서 영화적 정체성을 고민하고 감독의 자아를 드러내는 작품들이라는 미덕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 중에 심사위원단은 각자 수상작으로 논의할만한 작품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시작하였고, 흥미롭게도 각자의 추천작들은 크게 이견을 보이지 않을 만큼 유사한 목록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영화가 만장일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짧지 않은 토론 속에서 우리는 서울 독립영화제에서 우리가 지지해야할 영화들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를 보았습니다.
먼저 2011년, 심사위원단이 대상작으로 선정한 영화는 신아가, 이상철 감독이 공동연출한 <밍크코트>입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종교적 신념과 갈등의 문제, 가족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애정과 증오 등을 매우 밀도 있고 긴장감 넘치는 카메라 워크로 완성한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연배우 황정민씨가 보여준 연기는 최근 충무로와 독립영화계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고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캐릭터였습니다.
최우수 작품상으로는 김지현 감독의 <요세미티와 나>가 선정됐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독립영화를 해온 감독의 지난하고도 사적인 경험을 담아낸 이 작품은 감독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관객들을 즐겁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직면하였을 제작의 어려움을 잘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
우수상 수상작은 정대건 감독의 <투 올드 힙합 키드>입니다. 이십 대 중후반의 청년들이 지닌 힙합에 대한 열정과 그 이면에서 충돌하는 안정적 삶에 대한 욕망 등을 조화롭게 잘 그려낸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카메라를 처음 든 감독이 스타일과 기교로 과잉하지 않고, 자신의 고민을 영화적 주제로 진솔하게 일치시킨 작품이라는 점에서 평가를 받았습니다.
심사위원특별언급상으로 <레즈>의 선호빈 감독에게 수상합니다.
독립영화 스타상은 두 작품에게 돌아갔습니다. 먼저 연기자 상은 이우정 감독의 <애드벌룬>에서 10대 소녀의 미묘한 감정적 동요를 잘 보여준 배우 이민지입니다. 이민지씨는 비단 이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독립영화에서 언제나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배우라는 점에서 심사단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은 <미국의 바람과 불>에서 방대한 자료를 자신의 주제의식에 맞게끔 적확하게 선택하고 편집한 열정과 끈기를 보여준 김경만 감독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영화는 한미 관계의 지형을 오랜 역사적 맥락에서부터 추적한 작품입니다. 별다른 내래이션이나 자막없이 무수한 뉴스 화면들의 편집만으로 감독 자신의 주제의식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완성도와 주제의 중요성, 연출 스타일의 혁신성 등으로 심사과정에서 비중 있게 논의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수상결과에 들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선에 오른 48편의 영화들은 모두, 올해 한국 독립영화계의 현재적 지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작품들입니다. 더더구나 한국 독립영화들이 모두 열악한 상황 속에서 전투하듯 힘겹게 완성된 결과라는 점에서, 그 노력과 열정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11 본선심사위원 일동
구정아 (프로듀서)
나희석 (촬영감독)
정지연 (영화평론가)
조영정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윤성호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