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른아홉 해를 맞이한 서울독립영화제는 경쟁부문에 총 742편의 단편영화가 출품되어 역대 최다 출품을 기록했고, 작품 선정을 위해 더 치열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년 새로운 단편영화들이 쏟아질 때마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의 ‘만듦새’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단편 작품들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0년대 이후 단편영화 작업에서 디지털 작업이 일상화되고, 최근에는 HD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도 큰 저항을 느끼지 않게 되며, 적어도 ‘기술적인 만듦새’에서는 많은 연출자들이 자신감 있게 연출하고 있음을 더욱 확신하게 된 심사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심사 과정에서 더 숙고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아쉬웠던 점은 기술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만듦새가 상향 평준화된 반면에 742편의 영화 중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즉 눈에 확 띄는 작품은 오히려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술적 만듦새의 상향 평준화 반대편에 ‘새로움’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는 것을 말해 두고자 합니다.
최종 선택된 작품들 중에는 올 한 해 많은 영화제에서 이미 호평을 받은 작품들도 있지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는 작품이 절반 이상 됩니다. 이 중에는 갓 완성되어 새롭게 출품된 작품도 있지만, 다른 영화제에서 외면받은 작품들 중에 우리가 새로이 지지하고 싶어 선택한 작품들도 상당수 포진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학교 폭력, 대리운전, 가출 패밀리, 이주 노동자, 영화감독/시나리오 작가/촬영 현장 등을 소재 혹은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여전히 단편영화들이 동시대 현상에 민감하게 관심을 갖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편으론 영화인들이 처한 여러 가지 현실들을 돌아보는 자기반영적이면서도 자기성찰적인 태도들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이러한 성격을 지닌 작품들 중 여러 고민 끝에 일부 작품들만 최종 선택되었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한 주제적 안배를 통해 독립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세계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단편의 러닝타임이 현저하게 길어지고 있음도 눈에 띄는 현상이었습니다. 거의 5~60분에 육박하는 영화들도 상당수 포진되어 있었습니다. 전과 달리 단편영화 감독들이 언제든 장편영화를 ‘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현상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단편’영화만의 미덕인 ‘짧아서 아름다운’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없는 게 아쉽기도 했습니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 슬로건은 ‘Why Not?’입니다. 경쟁부문 단편에서 고심 끝에 선택한 최종 45편의 작품은 여러모로 이 슬로건에 준하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다들 영화를 잘 만드는 시대가 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창의적인 면에서나 현실적인 면에서 쉽지 않은 작금에 자기만의 고집으로 “와이 낫?”하며 성실하게 작품을 만든 마흔다섯 감독들을 지지하며 여러분 앞에 내놓습니다. 이들의 기개와 상상력을 맘껏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단편 예심위원(가나다순)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장)
김영우(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
최진성(영화감독, <소녀>)
허경(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