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굉장히 다양하고 많습니다. 그 무수한 영화제들이 각기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차별화하고, 어떤 새로운 영화들을 발견하고 소개하며, 그 지향점은 무엇인지 역시 다양할 것입니다. 올해로 39회를 맞게 되는 서울독립영화제의 가장 중요한 모토는 말 그대로 ‘독립’입니다. 기나긴 시간을 거쳐 온 만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독립’의 의미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지점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창작을 속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독립일 것입니다. 물론 이 독립의 의미가 창작자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독립의 지점이, 창작자에겐 제작 과정의 무수한 고단함을 동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잘 알기에 우리의 심사 과정은 그리 편치만은 않습니다. 모든 영화들이 저마다의 전투 속에서 만들어졌고, 그 안에서 다양한 차이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영화를 지지할 것인가, 혹은 어떤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소개되어야 할 것인가? 또 혹은 어떤 영화가 의미 있는 논쟁을 촉구할 수 있을 것인가야말로 우리 예심위원들이 가장 주목했던 지점이며, 또한 최종 경쟁에 오를 영화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격렬하게 논쟁했던 부분입니다.
올해 출품된 장편 독립영화 총 68편 중 다큐멘터리가 29편, 극영화가 33편, 실험영화 및 기타 6편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경쟁부문 본선에 오른 영화는 총 9편으로 그중 3편이 극영화이며 6편이 다큐멘터리입니다. 먼저 30여 편의 장편 극영화들은 작년의 영화적 경향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작년 출품작 중 장르적 경향 혹은 폭력에 대한 묘사가 노골적인 작품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올해 영화들은 그에 비해 나이브하게 느껴질 만큼 소소한 삶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물론 몇몇 재기 넘치는 장르적 시도와 틀에 얽매이지 않는 가볍고 발랄한 형식 파괴, 그리고 사극 영화에 대한 도전까지 나름 다채로웠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나 영화언어에 대한 탐구, 인디 스피릿이라 할 만한 새로운 혁신 등은 여러모로 아쉬운 지점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선택한 3편의 극영화는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는 영화적 만듦새를 지녔거나 혹은 관객들로 하여금 틀림없이 논쟁을 자극할 만한 소재 및 방법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강세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독립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사회적 진실의 추동자임을 새삼 상기했으며, 그런 만큼 주류 영화계나 언론에서 외면당하는 주요한 이슈들을 포착하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와는 달리 매우 사적인 다큐멘터리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거의 비디오 다이어리라 불러도 무방할 이런 영화들은 자신의 개인사 혹은 가족사를 적나라하게 카메라 앞에 드러내곤 하였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소재적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의 형식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무수한 영화들은 거의 공통적이라 할 만큼 어떤 사건의 현장에 밀착해 들어가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에 머물곤 하였습니다. 보여 주기와 말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과 논쟁할 수 있는 새로운 혁신의 다큐멘터리가 다소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선택한 다큐멘터리는 총 6편입니다. 망각된 혹은 말살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증적 기록의 다큐멘터리에서부터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현안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사적인 가족사 혹은 개인사를 포착함으로서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다큐멘터리 등이 여기에 포함되었습니다.
실험영화는 총 4편이 출품되었고 매 작품마다 독특한 언어와 이슈들을 담고 있었습니다만 아쉽게도 최종 본선에 오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올해 2013년 39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총 9편의 장편 경쟁작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영화들을 선택하게 된 우리 예심위원들의 첫 인상처럼, 어떤 영화들은 단박에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매료시킬 것이며, 또 어떤 영화들은 ‘왜?’라는 의아함과 더불어 논쟁을 자극할 것이며, 또 어떤 영화들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일깨우며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영화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영화인들이 일궈 낸 지난한 노력의 성취임에는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선에 오르지 않은 다른 59편의 영화들에도 뜨거운 박수와 함께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장편 예심위원(가나다순)
정지연(영화평론가)
조영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허욱(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 용인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