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2015 경쟁 부문 심사평
서울독립영화제 2015의 경쟁 부문 심사위원인 서영화, 신수원, 이용철, 이해영, 황덕호는 지난 1주일에 걸쳐 48편의 작품을 보았고 심사를 마쳤습니다. 심사를 하는 게 워낙 즐거운 작업은 아닙니다만, 전체적으로 흥미롭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데 이견은 없습니다. 그만큼 작품의 질이 높았다는 뜻일 겁니다. 누구나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자칫 우려되는 만듦새의 하락은 그야말로 기우였음을 절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예전과 달리 정치적인 색채의 작품이 많이 줄었다는 점입니다. 단, 이것은 일부러 비정치적인 컬러를 지향하겠다는 의지와는 무관해 보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각자의 고통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정치적인 상황을 반영한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까 또 다른 정치성을 유보하고 있을 뿐인 거지요. 나와 옆의 사람이 나란히 가난하고 힘이 없을 때, 우리는 함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만 상대적으로 빈곤하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거기에서, 48편 영화 가운데 많은 작품으로부터 개인의 고통과 만났던 이유를 찾아봅니다. 48편 영화 중 스무 편에 가까운 영화가 죽음 혹은 죽음에 가까운 상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넘겨버릴 일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가족과 사회는 더 이상 안락한 보호 장치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을 영화로 목격하는 것, 그것이 주는 통증은 컸습니다.
또 하나의 경향은 대중적인 성향을 지닌 작품들이 예년에 비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 점이다. 예심을 맡은 심사위원들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인지, 관객에게 다가서려는 주최 측의 몸부림인지는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친대중적이어서 예전 같으면 서독제에서 보기 힘든 작품들도 여럿 선보였는데, 이런 것에 대해 딱히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걸 두고 시대가 변했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좋은 영화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자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통적으로 지지해온 영화의 스타일과 소재와 이야기에 대해 거꾸로 질문하는 시간이 도래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경향이라는 게 얄팍한 것이어서, 이 심사평이 무안해질 정도로 내년에 곧 뒤바뀔지도 모르는 거니까요.
끝으로 저희가 결정한 수상작들을 보면서 심사하는 사람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 놓인 간극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심지어 심사위원에 감독과 배우가 세 명 포함되어 있음에도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것은 가장 좋은 영화라기보다 최선의 몸짓이었다고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이건 그저 위안을 위해 하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 상이 아니지요. 서울독립영화제 2015에서 함께 보고 나누었던 시간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15 경쟁부문 심사위원 일동 (가나다순)
서영화(배우)
신수원(영화감독)
이용철(영화평론가)
이해영(영화감독)
황덕호(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