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본선 단편경쟁 부문에 작품을 선보인 감독과 배우, 제작진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예심위원들이 언급했듯, 24편 모두 제한된 여건에도 불구하고 분투하는 상상력의 보고였습니다. 낯선 공간의 불협화음은 경이로웠고(<균열><조에아><Trans-Continental-Railway><Video Noire>), 배제된 역사의 웅얼거림은 소중했습니다(<농몽><황룡산><메이•제주•데이>). 소외된 인물과 장르의 매력을 융합한 작품엔 여지없이 시선을 뺏겼고(<짝사랑><나랑 아니면><국가유공자><불모지><아무도 모르게><장갑을 사러><돌림총><건전지 아빠><매미><퇴직금>), 내면의 풍경을 자유롭게 내보인 작품엔 주저 않고 감응했습니다(<씨티백><습지 장례법><선율><입하><보속><어디에도 없는 시간><굿포유>).
신중한 논의 끝에 선정한 올해의 대상은 양재준 감독의 <보속>입니다. 사회에서 낙오한 뒤 성당 자활원에 숨어든 몇몇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나, 영화는 그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강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윤리적 물음으로 나아갑니다. 고해와 보속이라는 의식과 행위가 반복되지만, 그들의 죄는 조금도 경감되지 않습니다. 언제든 빵을 나눌 수 있지만, 결코 마음을 나눌 순 없는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관념적 주제를 일상적 관계로 풀어내는 솜씨를 지닌 감독과 배우는 비좁은 공간에 묶여 버둥거리는 소수의 타인들이 실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임을 기어이 설득하고 마는데, 이것이 이견 없이 <보속>을 꼽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최우수작품상은 황선영 감독의 <씨티백>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이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얼굴도 없습니다. 이름을 말하지만 이름이 없습니다. 얼굴을 보이지만 얼굴이 없습니다. “만날 오토바이 타고 놀던” 철부지 10대들이 주목받고 기억될 리 없겠지요.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검은 뭉텅이”입니다. 노래방과 당구장, PC방을 전전하던 검은 뭉텅이들은 왜 밤만 되면 한데 모여 대로를 휘젓고 고가를 누비는 걸까요. 세상의 눈을 피해 도망쳤으나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싶었던 검은 뭉텅이들의 진솔한 토로는 때론 두서없지만, 그래서 강력합니다. 섣부른 규정, 임의적 재단, 감상적 회고를 걷어 낸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수작품상은 이탁 감독의 <불모지>입니다. 터전을 잃을 사정에 놓인 여성들과 천금을 챙길 기회를 얻은 남자들의 싸움을 다룬 작품으로, 이들의 극한 대결을 돋보이는 기술적 성취로 형상화했습니다. 성스러운 노동을 경외하는 자연의 인물들과 불순한 욕망에 휩쓸린 문명의 인물들로 이분화한 갈등 구도가 다소 진부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지에 바짝 붙은 카메라로 올려다본 일련의 클로즈업 숏들이 인간의 일그러진 탐욕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새로움에 목마른 관객들 또한 서사의 규칙을 비틀어 파격을 자아내는 대신 전형의 장점을 극대화한 영화의 선택을 수긍하리라 믿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1 본선 단편경쟁 부문 심사위원 일동
김선(영화감독)
김초희(영화감독)
이영진(<리버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