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바람이 분다 Again the Wind Blows
김태일, 주로미 KIM Tae-il, JU Ro-mi | 2022 | Documentary | Color | DCP | 103min 36sec (K,E)
Synopsis
광주 대인시장에서 행상하는 하문순과 평화반점의 박복자는 518항쟁을 지켜보았다.
삶의 현장에서 보았던 518항쟁은 아픔과 자부심으로 남았다.
캄보디아의 소수부족으로 살아가는 슬리와 네이떽은 고단한 노동을 감내하며 살아가지만, 언제까지 이 삶을 지켜낼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점령 하에도 삶을 멈추지 않았던 팔레스타인의 여성들-난민촌에서 노인이 된 노우라, 파트마는 자식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언제까지 이 상황이 이어질까?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누구도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보스니아에서 살아가는 집시-그들은 종교와 민족으로 구분하여 서로를 적으로 삼았을 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공공의 적으로 취급되었다.
오랜 시간 인종차별의 대상이었던 집시 여성들의 불안한 삶을 라미자와 아멜라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한편 감독의 두 아이는 어린아이에서 20대 청년이 되었다.
그들과 상구네는 어딘가 닮은 듯 흔들리며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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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어느덧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 터널을 나가면 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다른 터널이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지난 몇 년간 ‘어제와 다른 세계’(2020)를 만나 ‘등과 등을 맞대며 Back to Back’(2021) 오늘에 다다랐습니다. 새로운 끝이자 시작으로 나아가는 때, ‘사랑의 기호’라는 슬로건과 함께 영화를 둘러싼 미지와의 조우를 펼치고자 합니다.
2022년 서울독립영화제가 첫 번째로 관객에게 보내는 기호인 개막작은 김태일·주로미 감독의 신작 <또 바람이 분다>입니다. 김태일 감독은 1993년 <원진별곡>으로 다큐멘터리를 시작, 이후 ‘푸른영상’에서 <분단을 넘어선 사람들>, <4월 9일> 등 다섯 편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단체에서 독립한 이후 <길동무>를 제작하고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부터 영화적 동지인 주로미 감독이 본격적으로 작품에 조력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민중의 세계사> 시리즈의 비전이 구체화됩니다. 가족 전원이 참여하는 제작사 ‘상구네’ 필름을 꾸리고 진짜 시작된 여정의 출발지는 뜻밖에 광주(<오월愛>, 2010)였습니다. 세계라는 수식어도 우리의 문제를 직면하기 위함이었고, 역시나 작품에서 또 다른 광주를 기록하며 민중사 시리즈의 원칙과 방향을 정해 나갑니다. 다음으로 캄보디아 부농 마을(<웰랑 뜨레이>, 2012)에서 소수민족과 함께 노동하고 이스라엘 점령하 팔레스타인의 난민촌(<올 리브, 올리브>, 2016)을 거쳐 2019년 보스니아의 집시 마을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넘어 발길 닿는 곳마다 현대사의 질곡을 겪은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기록하고 대화 나눕니다. <또 바람이 분다>는 상구네의 네 번째 민중사 시리즈입니다. 2019년 보스니아에서 촬영을 개시하였으나, 코로나19로 후속 제작에 어려움을 직면합니다. 팬데믹이 역으로 세상에 쉼표의 시간을 주었듯 김태일·주로미 감독도 가족과 함께한 민중사 시리즈의 10년 시간과 공간을 다시 돌아봅니다.
<또 바람이 분다>는 2019년 만난 보스니아의 집시 가족을 포함하여 그동안 찾은 민중사의 공간에서 ‘여성들’을 주목하여 재정리합니다. 변방에서 변방으로 소수에서 더욱 소외된 곳으로, 그곳의 여성의 삶에서 역사와 현실을 비추어 봅니다. 영화의 또 하나의 축은 카메라를 거꾸로 돌려 제작진 가족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누구든 매혹될 오프닝에선, 제작사 작명에 100% 지분을 가진 조연출 김상구와 제작보조 김송이를 대상으로 조기 교육을 펼치는 김태일의 다정한 모습부터 제작 동참을 자녀에게 설득하는 두 감독의 우직한 의지까지 교차합니다. 전형적인 386세대와 MZ세대의 뜻밖의 동행은 작품에 활력과 생동감을 가져옵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타바타박 상구네 민중사 기행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는 김태일과 가족의 카메라가 닿으면 이상하게도 먼 나라가 마치 내 옆에 가까운 이웃이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 갈등과 내전을 겪은 가난한 땅의 처절한 이미지는 익히 보아 왔습니다. 두 감독은 가급적 익숙한 이미지와 목소리를 배제하고자 노력합니다. 가족이 직접 보고 만나서 듣는 가운데 어떤 태도와 시선이 희한하게도 이미지에 침투하는 듯합니다.
김태일 감독은 2005년 <안녕, 사요나라>와 2010년 <오월愛>로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두 번 받았습니다. 2022년 <또 바람이 분다>를 개막작으로 선정함은 서울독립영화제가 두 감독과 상구네 필름 제작진에게 보내는 존경과 감사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김태일·주로미 감독의 따뜻한 카메라 앞에 절로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민중의 세계사> 시리즈의 중반입니다. 힘내서 다음 발걸음 힘차게 내딛기를 응원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다큐멘터리의 마음과 만나는 마법 같은 순간을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2 집행위원장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