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대의 삶 The Cenozoic Life
임정환 LIM Jung-hwan | 2023 | Fiction | Color | DCP | 98min (E) World Premiere
Synopsis
실종된 남편을 찾아 리투아니아에 온 김민주는, 오래전 이곳에 이민을 온 대학 후배 오영의 집에 머무른다. 민주는 오영과 함께 살림을 차린 이상한 한국 남자로부터 실종된 남편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지만, 오영과 남자의 갑작스러운 다툼으로 인해 쫓기듯 그들의 집에서 나온다.
하릴없이 묵게 된 낯선 호텔에는 국제형사기구 요원임을 자칭하는 수상한 두 사내가 찾아오고, 민주는 남편의 흔적을 찾기 위해 그들의 여정을 따라간다. 이제부터는 인물의 시간과 공간이 뒤섞이면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민주가 찾던 것들의 모습도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
한 해를 수렴하는 계절 어김없이 서울독립영화제가 돌아옵니다. 제49회를 맞는 서울독립영화제는 ‘디어 라이프’를 슬로건으로 친애하는 모두의 삶을 환대하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축제의 문을 여는 올해의 개막작은 임정환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신생대의 삶>입니다. ‘신생대’라는 지질시대의 용어를 소환하자 단박에 머나먼 과거의 시공간이 떠오릅니다. 기원과 굴곡진 역사를 더듬어 보니 반복되는 무료한 삶도 왠지 매혹적으로 느껴집니다.
임정환 감독의 작품은 세계를 관통하는 몇 가지 특성이 엿보입니다. 첫 번째로 사실을 재료로 판타지를 구성하는 ‘영화’의 기묘한 속성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과 허구, 진짜와 거짓말, 현실과 영화는 작품에서 반복되고 변주되는 코어입니다. 두 번째 사소하고 의미 없는 것들 사이에서 무겁고 본질적인 것을 배치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인물은 알 수 없는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친구를 만나 일상적인 만남을 갖지만, 주변엔 언제나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 창작의 고뇌가 뒤따릅니다. 세 번째 무엇보다 완전히 낯선 공간에서 영화가 진행되어 특별한 공기를 극대화합니다. <라오스>는 태국과 라오스에서 촬영하였고, <국경의 왕>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촬영한 바 있는데요. <신생대의 삶>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가 주 무대로, 다시 한번 동유럽을 찾습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 일인다역의 구조, 장르적 혼용 또한 작품을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입니다.
<신생대의 삶>은 사라진 남편의 존재를 찾아가는 여성의 플롯으로, 그녀와 미스터리한 인물들 간에 펼쳐지는 사소한 사건의 나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후배 부부를 만나고, 검은 양복을 입은 괴한에게 쫓기면서 간간이 사라지기 전 남편과의 행복한 일상도 비추어집니다. 후배는 주인공을 돕고자 하나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늘어놓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실종과 추적은 심각하지만, 영화의 전개 방식과 인물의 톤은 지극히 허술하고 우스꽝스럽습니다. 영화가 던진 질문에 퍼즐을 맞춰보자는 의지로 따라가다 보면 그만큼 맥이 풀리고 맙니다. 왜냐면 <신생대의 삶>은 그 의지를 해체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힘을 빼고 영화를 보다 보면, 장난스러운 말과 다중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뻔뻔함 속에 묘하게 동행하게 됩니다. 찾으려고 애쓸수록 함정에 빠져든다고 할까요?
어쩌면 영화의 관심은 애초부터 사건과 이야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각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합니다. 삶은 모호하고 너와 나는 다르지만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삶은 죽음을 예정하고 있기에 그들은 같은 이름입니다. 벗어 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직시. 발트의 하늘과 물, 숲과 도시는 지구와 우주로 한없이 확대됩니다.
임정환 감독은 2017년 <국경의 왕>으로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상을 수상 한 바 있습니다. 2023년 <신생대의 삶>은 서울독립영화제 후반제작지원으로 완성되었고 개막작으로 초대되었습니다.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서울독립영화제를 찾은 <신생대의 삶>의 감독 이하 제작진께 감사드립니다. 독립영화의 제작 방식이 더욱더 다채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라오스>, <국경의 왕>을 경유하여 <신생대의 삶>에 이르는 임정환 감독의 용감하고 신나는 영화적 도전과 여정을 응원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3 집행위원장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