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3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한국 독립애니메이션, 시대의 소묘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방충망>, <상흔>, <그날이 오면>, <히치콕의 어떤 하루>, <오래된 꿈>, <와불>]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한국 독립애니메이션, 시대의 소묘

 

한국영상자료원과 서울독립영화제가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은 독립영화의 시작 또한 필름영화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교육과 인프라가 없던 시절, 독립영화의 연출과 제작은 엄청난 의지의 발현이자, 무모한 도전이었다. 2023년 여섯 번째 기획전까지 이르기까지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은 22편의 작품을 복원 및 디지털화하였고 43편의 초기 독립영화를 관객에게 꾸준히 선보여 왔다.
영화의 디지털화는 제작과 유통의 효율화를 추구하였고, 플랫폼의 변화는 더욱 빠르게 물성에 기초한 영화의 본질을 위협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특성상 실사영화보다 앞서 디지털로 전환하였는데, 올해 기획전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 만들어졌던 귀한 필름애니메이션을 모아 소개하고자 한다. 1980년대 대학가와 단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던 최정현 작가의 <방충망>, <상흔>, <그날이 오면>과 1990년대 독립애니메이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와불>, 서울단편영화제에 입상하며 창작자와 관객에게 신선한 감명을 주었던 <오래된 꿈>, 마지막으로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재훈 감독이 참여한 <히치콕의 어떤 하루>까지 총 6편이다.
셀애니메이션은 편수 자체가 부족하여, 90년대 2D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하는 기획도 고민하였지만, 이번 기획전에선 필름(셀)애니메이션으로 국한하여 지금은 사라진 작업 방식과 작품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한국영상자료원이 파격적으로 모든 작품의 심화 복원을 결정하여 작품마다 멋진 선물을 선사하였다.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최정현 작가는 ‘반쪽이’로 알려진 만화가이자 조형예술가이다. 80년대 대학가는 다양한 사회적 예술 활동이 펼쳐지던 때였다. 최정현 작가는 시사만평을 그리며 영화와 탈춤, 노래운동 등과 영향을 주고받았다. 1983년 <방충망>은 경찰이 상주하던 대학가의 풍경과 학내 열사의 죽음에 대한 진귀한 기록이다. 1984년 <상흔>은 노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배경으로 신군부의 절망을 일제강점기에 빗대고 있다. 1987년 <그날이 오면>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각성된 민중의 저항과 열망이 담겨 있다. <방충망>은 종이에 <상흔>과 <그날이 오면>은 셀로 각각 작업하였다. 애니메이션보다 ‘만화영화’라는 표현이 익숙하던 시절, 스승도 동료도 없이 8mm로 제작한 원형적 작품이라 하겠다. 이번 영화제에서 30여 년 만에 공개될 뿐 아니라 최초로 극장 상영한다. 1991년 <와불>은 이용배 감독이 ‘서울무비’에 몸담으며 동료들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독립애니메이션이다. 어디서나 열정적이고 선도적인 이용배 감독은 학생 시절부터 예술의 사회적 책무를 고민했고, 애니메이션 하청부터 기획까지, 실사영화 제작부터 배급까지, 광범위한 경험을 바탕으로 <와불>을 탄생시켰다. 최초의 독립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독립애니메이션 운동에서 있어서 가장 인상적인 출발점에 있는 작품이다. 1994년 김현주 감독의 <오래된 꿈>은 유려한 이미지와 동화 같은 스토리로 기존 사회성 짙은 창작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된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향후 새로운 작품, 예술가들의 합류를 예고하였다. 1998년 안재훈·한혜진 감독의 <히치콕의 어떤 하루>는 ‘서울무비’의 마지막 작품이자 ‘연필로 명상하기’의 단초가 된 작품이다. 히치콕 영화의 장면을 오마주하며 전개되는 표현과 이야기가 촌철살인이다. 하청으로 부분화되어 있던 애니메이터가 작가와 감독으로 재탄생하는 계기를 맞게 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6편의 작품이지만 80년대와 90년대 독립애니메이션의 궤적을 살피기엔 손색이 없다. 이들 영화는 90년대 2D 영화들로 이어지며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세기를 열게 된다.
서울독립영화제는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을 통해 독립영화를 이해하는 다층적 시각을 제공하고자 한다. 현역에서 활동하는 창작자의 작품을 이해하는 결정적 단서가 숨어 있기도 하고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이해되기도 한다. 시작 당시 길을 찾기조차 어려웠지만, 지금은 아카이브 영화와 자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도 변함없이 구술사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다시 만난 독립영화 vol. 6』권과 유튜브를 통해 영상 아카이빙이 공개될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다린다.

 

김동현 / 서울독립영화제2023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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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충망> 최정현
<상흔> 최정현
<그날이 오면> 최정현
<와불> 이용배
<오래된 꿈> 김현주
<히치콕의 어떤 하루> 안재훈, 한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