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3 새로운선택 장편 부문에 6편의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각 작품의 감독님, 배우분들, 스태프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창작자의 크고 작은 시도가 엿보이는 6편의 개별 영화가 저마다의 방식과 시선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타진해 올 것입니다.
먼저, 4편의 극영화입니다. 손현록의 <그 여름날의 거짓말>은 여름 방학 동안 겪은 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쓰는 숙제를 받아든 고교 1학년생 다영의 격정 드라마입니다. 다영이 사랑과 이별을 회상하며 글을 쓰는 듯 보이지만, 여기에는 거짓과 진실, 기억과 상상, 사실과 이야기의 창작 가능성이 뒤섞여 매섭게 웅숭그리고 있습니다. 맹랑하고 저돌적이며 과격하지만 동시에 한없이 유약한 누군가의 후일담일지도 모릅니다. 김다민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영화적 상상력으로 동심의 세계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열어젖힙니다. 전례 없이 귀여운 주인공인 초등학생 동춘은 막걸리의 기포 소리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임을 용케 알아차리고 막걸리와 놀라운 교신을 시작합니다. 무덤덤하다 못해 피곤해 보이기까지 한 아이의 세계는 이 새로운 발견을 통해 교실 밖으로, 심지어 지구를 넘어 우주로까지 뻗어나가며 환상적인 모험극으로 변모합니다. 유승원의 <아가미>는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영화입니다. 서먹한 이복 남매가 아버지의 장례로 재회한 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시골집에서 얼마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각자의 스산한 마음의 풍경과 마주합니다. 더없이 정적이고 한없이 차가운 정조가 지배적이던 영화는 정제된 쇼트와 프레임 운용, 차이와 반복의 형식적 고민을 통해 이상한 떨림과 미세한 파동으로 고요의 수면에 기이한 균열을 냅니다. 오정민의 <장손>은 지방에서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3대에 걸친 대가족의 통속적 풍경을 살뜰하게 그려나갑니다. 인물들의 관계도를 꼼꼼히 축조하는 이 우직하고 진중한 가족드라마의 저류에는 내밀한 감정의 결이 여럿 나 있고 미처 표면화되지 않던 복잡다단한 심리적 기류가 잠복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실험도 이어집니다. 손구용의 <밤 산책>은 탐미적 관찰과 강한 모험심으로 만든 무성 다큐멘터리, 풍경 영화입니다. 서울의 세검정 일대의 밤 풍경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다다른 심미적 정취를 영상 이미지와 감독이 직접 그린 그림,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로 재구성했습니다. 김건희의 <여공의 밤>은 감독이 나고 자란 서울 영등포에 관한 개인적 기억과 지난 시대의 역사가 색다르게 접속합니다. 그곳은 일제 강점기 때 수많은 여성 공장 노동자들이 있었던 곳, 하지만 그녀들의 역사는 좀처럼 기록되지 않은 채 지워졌던 바로 그곳입니다. 유실되고 잊힌 삶과 기억, 그리고 영화가 기나긴 세월을 관통해 다시 살아납니다.
전혀 다른 6편의 영화가 불러일으킬 감정의 격랑, 불가해한 에너지, 낯선 감각, 해석 불가의 순간이 부디 관객분들의 세계에 오롯이 가닿기를 바랍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3 프로그램위원회
김영우(서울독립영화제2023 집행위원 & 프로그래머)
정지혜(영화평론가)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2023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