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 초이스에 들어갈 작품을 선정할 때면 당연하게 ‘페스티벌’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축하하기 위해 벌이는 행사라는 점에서 페스티벌은 ‘함께한다’는 의미를 전제합니다.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하고 즐기는 것에 더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페스티벌에 해당할 겁니다. 페스티벌 초이스에 선정된 스물한 편의 작품은 다양한 장르로 갈래를 뻗지만, ‘함께’의 가치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먼저, 축제의 기분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키싱유>는 소녀시대의 첫 번째 단독 콘서트를 구경하러 가려는 삼 인의 소동이 청량한 웃음을 선사합니다. <버거송 챌린지>는 반장에 당선된 후 반 친구들에게 햄버거를 나눠주려 버거송 챌린지에 나서는 주인공의 사연이 어딘가 짠하면서도 응원하는 마음을 들게 합니다. <인천메탈시티>는 1990년대 인천을 중심을 활동했던 메탈 밴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당시를 추억하게 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함께’ 봐야 재미가 배가되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신분이 서로 다른 남매와 조카가 자존심을 걸고 윷놀이 한판을 벌이는 <빽도>는 극 중 게임의 추이가 주는 재미는 물론 그로 인한 삶의 교훈까지 꽉꽉 채워 넣습니다. <X의 저주>는 자칫 음란해질 수 있는 내용을 전혀 민망하지 않게 오히려 19금의 의심을 무장해제하게 하는 무해함이 압권입니다. <이씨 가문의 형제들>은 가부장의 폐해가 여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묘사하면서 기존의 어둡고 무거웠던 분위기에서 벗어난 밝고 유쾌한 시도가 이 소재의 진일보를 보증합니다.
다음 소개하는 세 편은 ‘함께’의 가치가 깨졌을 때 발생하는 긴장을 장르의 축으로 삼습니다. <함진아비>는 과거에 행한 폭력의 가해가 어떻게 피해로 돌아오는지, 인과응보의 이야기를 공포물로 풀고, <작두>는 무당집을 배경으로 인간 사이의 시기와 질투와 신경전 등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들여다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셰익스피어 극을 가져온 <오필리어>는 무대와 현실의 경계를 지워 비극의 드라마를 실험적으로 끌고 갑니다.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손을 내미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사라>는 ‘산다 buy’와 ‘살다 live’의 개념을 접목해 삶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합니다. 각각 이주 노동자와 해외 입양아가 타이틀롤을 맡은 <소화가 안돼서>와 <찌개>는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의 어려움을 흥미로운 드라마로 풀어갑니다. <소년유랑>은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 세상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시적인 이미지로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함께’ 마음을 나눠야 좋은 세상이 온다는 것은 이들 영화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복순씨의 원데이 클라쓰>와 <백차와 우롱차>는 음식, 차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먹고 마시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타인의 생각과 고민을 나누며 기쁨을 배가하고 슬픔을 위로하는 것의 가치가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를 공손하게 설명합니다. 1918년생 할머니가 직접 자신의 지나온 삶을 구술하는 다큐멘터리 <옥순의 조각>은 인생 그 자체가 역사가 된다는 메시지 앞에 우리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영화로 ‘함께’ 호흡했던 유명 영화인들의 작품도 반가운 목록입니다. 배우로 친숙한 장동윤은 <내 귀가 되어줘>에서 감독으로 데뷔하고, 장철수 감독은 소리가 사라진 세상을 다룬 <정적>으로 반가움을 더합니다. 애니메이션 연출자보다 장인의 호칭이 더 어울리는 전승배 감독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 <건전지 엄마>를, 이성강 감독은 셀 애니메이션 <바람의 모양>으로 관객을 찾아갑니다. 목소리 출연하는 염혜란과 라이징 스타 박지후의 <나의 애정은 살아있다>는 페스티벌 초이스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입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3 프로그램위원회
김미영(영화감독 <절해고도>)
허남웅(영화평론가)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2023 집행위원장)
박수연(서울독립영화제2023 프로그램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