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4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 1960-1990 독립영화의 고고학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 1960-1990 독립영화의 고고학

서울독립영화제는 2017년 故 홍기선 감독의 필름 디지털화를 시작으로 2018년부터 정기적으로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을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주최하고 있다.
지금까지 본 프로그램을 통해 30여 편의 필름 영화가 복원·디지털화되었고 49편의 작품이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문헌과 자료로만 존재하던 귀한 초기 독립영화가
묵은 먼지를 걷어 내고 현대의 조명을 받는 과정이었다. 기획전 진행 과정에서 다수의 영화와 자료가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되어 독립영화 유산 보존의
실천적 수행이 병행된 점도 뜻깊다.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이후 한국 영화와 초기 독립영화의 상관관계, 독립영화와 영화운동에 대한 관심과 해석이 확대되었다.
그만큼 우리 영화의 지평 또한 넓어졌다 자부한다.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의 상영작은 독립영화의 역사를 새롭게 소묘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
2024년 50주년을 맞는 서울독립영화제는 그 연장선에서 ‘1960-1990 독립영화의 고고학’이라는 주제로 6편의 귀한 작품을 준비하였다.

<손>(1966)은 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국제박람회에서 공개 입선하였다. 50초 분량의 35mm 흑백 실험영화로 당시 언론은 ‘문화영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퀘벡시네마테크가 보유하던 필름을 서울국제실험영화제에서 소재 확인하였고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수집하였다.
한국 영화의 거장 유현목 감독은 후학 양성에 앞장섰던 스승이자, 시대정신을 실천적으로 반영한 운동가였다. 1960년대 국제영화제에서 얻은 서구 전위영화,
실험영화에 대한 통찰은 1964년 시네포엠 동인 결성과 35mm 단편영화 <선>, <손>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는 8mm 소형영화동호회를 통해
아마추어 영화인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애썼다. 기성 영화인으로서 영화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통감하였고 언제나 젊은 영화인의 편에서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였다.

<병사의 제전>(1969)은 하길종 감독의 UCLA(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MGM사가 수여하는 ‘메이어 그랜드상’을 수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반전, 히피, 아방가르드 등 당시 미국 사회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는 16mm 영화는 현실 세계와 대립하는 죽음의 징후를 초현실적 서사로 전개하고 있다.
귀국 후 하길종 감독은 영상시대를 설립, 한국 영화의 예술화를 선언하며 기성 영화 및 제도와 불화하였다. 감독의 유고와 함께 단체 활동이 중단되었지만,
영상시대의 시대정신은 1980년대로 이어지는 새로운 영화운동의 흐름에 유무형의 영감과 자산을 남겼다.

<판놀이 아리랑>(1982)은 서울대 얄라셩 멤버 주축으로 결성된 서울영화집단의 창립작이다. 서울영화집단은 영화와 현실을 치열하게 오가며
다수의 공동 작품과 활동을 전개하였고 영화적 논쟁을 촉발하였다. <판놀이 아리랑>은 극단 연우무대의 공연 <판놀이 아리랑 고개>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이다.
민중의 현실을 담고 있는 극 본연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1980년대 젊은 영화인들의 영화적 도전이 투영된 당대의 작품이다. 비디오와 사운드를 불일치시켜
관객의 영화적 각성과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은 1981년 <국풍> 등에서 그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8mm 필름은 유실되어 금번 기획전에서는 비디오 전환 버전이 상영된다.

<천막도시>(1984)는 <판놀이 아리랑>과 함께 1984년 ‘제1회 작은 영화제’에서 상영된 6편의 영화 중 하나다. 김의석 감독의 중앙대 졸업 작품으로 방송국에서
일하던 선배에게 대여한 리버설카메라로 촬영하였다. 방송국 포맷으로 프린트 생성에 이점이 있지만 사운드 작업이 용이하지 않아, 당시에도 필름과 별도로 녹음된 음향을
동시 재생하여 상영하였다. <천막도시>는 필름만 남고 사운드가 유실되었는데, 2024년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에서 김의석 감독의 총 연출하에 사운드를 100% 재작업하였고,
40년 만에 온전한 형태로 공개된다. ‘작은영화를 지키고 싶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상영작을 선별하고 대중을 규합하였던 ‘제1회 작은 영화제’는 대학가에 열린영화,
작은영화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증폭시키는 분수령 역할을 하였다. <천막도시>에 투영된 도시와 청춘의 얼굴은 <창수의 취업시대>의 서사와 정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김의석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생으로 <창수의 취업시대>는 아카데미 교육시스템과 1980년대 영화운동의 예술적 인프라가 묘하게 중첩되어 있다.

‘1960-1990 독립영화의 고고학’의 마지막 챕터는 1995년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다. <낮은 목소리>의 후속 시리즈는 복원되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앞서 상영되었으나 <낮은 목소리> 1편의 16mm 프린트는 유실되어 필름 디지털화 포맷으로 상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지속적으로
영화의 향방을 추적한 끝에 프랑스의 ‘시몬느 드 보봐르 센터’에 기증된 필름을 발견, 수집하였다. 16mm 필름의 디지털화 버전은 2024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다.

1960년대 실험예술영화를 이끈 귀한 필름부터 1990년대 독립영화의 상징적 위치에 있는 다큐멘터리까지,
기존 영화를 혁파하는 당대 영화의 시대정신을 금번 기획전과 6편의 작품 속에서 만나 보시길 권유한다.

                                                                                                                                                                                                          김동현 / 서울독립영화제 2024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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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아카이브전1]
<손> 유현목 | 1966 | Experimental | B/W | DCP | 1min
<병사의 제전> 하길종 | 1969 | Experimental | B/W | DCP | 32min
<판놀이 아리랑> 박광수, 김홍준, 황규덕, 문원립 | 1982 | Documentary | Color | DCP | 18min

[독립영화 아카이브전2]
<천막도시> 김의석 | 1984 | Fiction | Color | DCP | 30min
<창수의 취업시대> 김의석 | 1984 | Fiction | Color | DCP | 14min

[독립영화 아카이브전3]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 변영주 | 1995 | Documentary | Color | DCP | 93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