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4 본선 장편경쟁 부문 심사평
올해로 50회를 맞는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장평경쟁 부문의 심사위원들은 예심위원회가 엄선한 12편의 영화를 만났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것이 우리가 목격하고 발견한 독립영화의 최전선이다.’라는 선언과 마주한 느낌이었습니다. 저희 세 명의 심사위원은 기쁘면서도 엄중한 마음으로 낯선 장소와 감각, 새로운 인물, 그리고 날카로운 질문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귀한 여행을 마련해주신 서울독립영화제와 고군분투하며 열두 개의 세계를 완성한 창작자들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영화들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독립영화의 대지 위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목소리는 무엇인지, 이 땅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용기가 필요한지, 자문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상 수상작은 조세영 감독의 <K-Number>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즉각적으로 “또, 입양인 이야기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나아진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질문은 집요하고 끈질깁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국가 주도의 조직적인 범죄행위와 모순적인 구조를 목격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입양인 문제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족 중심주의와 비혼 출생의 혐오와 차별에서 촉발된 것입니다. 영화는 미국입양인 미오카(Mioka)가 친생 가족을 찾는 여정으로 출발하여 여러 해외입양인의 이야기로 확장하면서 입양 부모와 친생 부모의 마음까지도 들여다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조세영 감독이 시간을 견뎌내며 찾고자 했던 진실과 입양인 문제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과 온기를 품은 태도를 지지하고 응원해 마지않습니다.
최우수작품상은 허범욱 감독의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입니다. 오랜만에 등장한 괴력의 독립 애니메이션인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는 살처분의 현장에서 살아난 돼지와 자신을 괴롭히던 선임을 살인하고 탈영한 최정석 일병이 같은 산속에 고립되면서 벌어지는 혼돈과 야만의 시간을 그려냅니다. 시종일관 어두운 화면은 비가 내리거나 안개로 뒤덮이고, 기괴하고 음울한 사운드 디자인은 디스토피아적인 비(非)인간의 세계를 비정하게 묘사하는 데 조력합니다. 영화는 애니메틱 이미지로 표현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돼지와 괴물로 변해버린 인간을 현실과 판타지로 뒤섞으며 한치의 희망도 품지 않고 묵시록적인 상상력으로 돌진합니다. 우리는 한동안 잊었던 독립영화의 카니발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으며, 허범욱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를 좀 더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언급은 정재훈 감독의 <에스퍼의 빛>입니다. 이 영화의 기묘한 서사와 리듬은 동시대 청소년들이 즐기는 게임이나 가상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것처럼 보입니다. 보지 못한 것을 봤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영화 안팎으로 오가는 중력의 힘이 존재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감각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정재훈 감독이 이전의 작업에서 보여준 전위적인 실험이 변이하고 확장되고 있다는 확신을 들게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작업이 중단된 괴력난신(怪力亂神)도 완성될 날을 고대합니다.
열혈 스태프상
올해의 열혈스태프상은 편집자 이연정입니다. 다큐멘터리 <K-Number>는, 연출자가 집요하게 문제를 파고들 때 구조적인 모순을 함께 들여다보도록 구성해 내고 있습니다. 또한, 오랜 시간 미오카(Mioka)를 담았던 시선이 감상과 동정에 빠지지 않도록 노련하게 조율해 냅니다. <3학년 2학기>의 미덕은 무엇보다 등장하는 인물을 쉽게 소비하거나 버리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껴안고 기다린다는 데 있습니다. 이에 보답하듯 호연을 선보인 배우들의 얼굴과 몸짓과 리듬은 연출자의 사려한 마음과 담담한 절제미로 만들어낸 편집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창작자는 20년 넘게 영화산업에 종사하면서도 독립영화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극영화를 오가며 무수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올해 역시도 서울독립영화제 2024에 초청된 많은 영화에 편집자와 멘토로 참여하면서 독립영화인들의 든든한 동료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의 존재는 독립영화의 큰 힘입니다.
독립스타상
장편경쟁 부문에서 선정한 올해의 독립스타상은 강진아입니다. <3학년 2학기>의 창우 엄마 ‘현정’은 얼핏 보조적이고 기능적이어도 충분한 역할처럼 보입니다. 현정의 단단한 표정과 강직한 목소리는 아빠와 남편의 자리를 의연하게 메꾸어냅니다. 억척스럽지만 유난하지 않고, 솔직하지만 비굴하지 않은 현정의 태도는, 관객들에게, 가난하지만 생기를 잃지 않는 삶을 체화해 내는 원숙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독립영화의 젊은 얼굴이었던 강진아가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로 등장해 흔들리는 인물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연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실천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4 본선 장편경쟁 심사위원 일동
김동원(영화감독)
방은진(배우 겸 영화감독)
장건재(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