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선택 부문의 단편을 선정할 때면 심사위원들은 ‘새로운’의 기준에 대해 먼저 생각합니다. 이전에 존재한 적 없는 영화가 가장 부합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작품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익숙한 소재, 눈에 익은 장르, 보편의 메시지라고 할지라도 이에 접근하는 감독의 시선과 태도와 이미지를 다루는 솜씨와 독특한 연기 스타일을 가진 배우의 출현과 스태프들의 탁월한 재능 등이 다른 방식으로 발휘될 때 작품에 새로운 공기를 주입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는 합니다. 올해 새로운 선택 부문에 오른 18편의 작품은 설명한 기준을 적용해 뽑았습니다.
장르물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환상특급>을 연상하게 하는 <급한음끄기>는 희귀한 한국 SF의 가능성으로 다음 작업을 기대하게 합니다. 여성 전화 상담원이 등장하는 <상담원 범유석>과 얼음 조각에 사로잡힌 남자의 < The Ice Cube >는 짧은 상영 시간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대중적이어도 창의적으로 만들기 쉽지 않은데 그럴 때 새로운 유형의 배우는 장르를 전혀 다르게 변화시킵니다. <짝사랑 난이도 최상>이 그렇습니다. <다음 중 마리아가 전화를 건 목적은> 또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의 매력이,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은 장애인 배우들의 티키타카를 연상하게 하는 호흡이 해당 영화를 다른 차원으로 이끕니다. <변주곡>은 익숙한 소재를 어떻게 변주하면 새롭게 보일 수 있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경우입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할수록 그에 맞춰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생각과 고민과 걱정거리 또한 전과 다른 형태로 발현이 됩니다. 눈 밝은 연출자는 이를 그 즉시 캐치하여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시선정>은 원하지 않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어떤 체화의 과정을 거쳐 현실을 받아들이는지 세심하게 살핍니다. <손으로>는 친구의 연애를 도와주는 척 실은 그 친구를 바라보는 인물의 남다른 감정을 따뜻하게 바라봅니다. <이부자리>는 엇갈린 가족 관계 속에 누구보다 혼란해하는 어린 자식 세대의 미스터리한 행보를 따라가며 성장기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 보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올해 단편의 경향 중 하나는 괄목할 만한 애니메이션의 대거 출현입니다. 새로운 선택 부문에는 부분 삽입되거나 장르의 혼합 형태까지 다섯 편의 작품이 올라왔습니다. <뉴-월드 관광>은 사진첩을 넘기듯 1980년대를 추억하게 합니다. <겨울잠>과 < Walking Trail >은 동물 캐릭터를 우회하여 각각 회사와 가족 관계를 돌아보게 합니다. <언더랜드>는 애니메이션이면서 실험 다큐의 형식을 빌려 우울증과 무기력에 빠진 인간 심리를 서술하고 <육 년과 여섯 번>은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회상하는 화자의 서술법 중 하나로 애니메이션을 활용합니다.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와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는 전혀 다른 주제와 형식과 내용으로 다큐멘터리의 다양성을 제공합니다. 또한, 이강길 창작 지원작 <산의 뱃속>은 시간과 기억의 지층을 품은 산의 이야기를 극영화의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이 부문이 핵심으로 삼는 새로움은 다양성과 직결해서 18편의 작품 중 무엇을 보든 전혀 다른 만족도를 얻어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4 프로그램위원회 (가나다순)
김보람(영화감독<두 사람을 위한 식탁>)
박수연(서울독립영화제2024 프로그램팀장)
허남웅(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