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에는 총 20편의 장편을 초청합니다. 16편의 장편을 초청했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4편 정도가 늘어났는데요. 올해가 서울독립영화제 50주년을 맞이하는 해라서 더욱 많은 창작자와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또한 예년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장편 출품 편수가 시사하는 바를 선정 편수에 반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전면적인 위기 상황에도 계속해서 혁신하고 도전하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한국 독립영화의 너른 품을 페이스 초이스 장편 부문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에는 총 5편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합니다.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에서 감시와 착취에 시달리던 광부들이 공권력과 충돌한 사건을 따라가는 박봉남 감독의 <1980 사북>, 40년 전 자살한 고모의 흔적을 따라가며 가부장적 한국사회와 역사에서 소외되고 침묵을 강요당했던 여성의 존재를 회복하려 시도하는 양주연 감독의 <양양>,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동력 삼아 거대한 괴물의 형상으로 작동하던 반공 이데올로기가 남긴 흔적을 기억과 이미지를 통해 소환하는 김무영 감독의 <폭력의 감각>은 올해 서울독립영화제 후반제작지원작이기도 합니다. 한국 기후위기 영화를 표방하며 3명의 감독이 의기투합해서 3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남태제, 문정현, 김진열 감독의 <바로지금여기>, 그리고 도심에서 우연히 마주친 말에서 출발해 문명과 산업의 발전, 동물권과 여성인권운동, 이동수단의 발전을 거치며 무한히 확장하는 사유를 보여 주는 이원우 감독의 <오색의 린>까지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있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손구용 감독의 <공원에서>는 오규원 시인의 ‘뜰의 호흡’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로, 한적한 오후 도심 공원에 앉아 있는 인물을 두고 시간과 주변 사물의 정취, 그리고 일상의 소리를 포착하려 합니다. 데뷔작 <기행>으로 주목받았던 이하람 감독의 영화 <뭐 그런 거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관통하는 인물들이 보여 주는 기이한 정서와 장르적 혼종으로 버무린 과감하고 도발적인 시도를 담아낸 영화입니다.
극영화의 면면도 다양하고 매력적입니다. 사채 빚에 시달리다 엄마의 통장을 노리고 요양원에 있는 치매 초기 엄마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황슬기 감독의 <홍이>, 이른 나이에 은퇴해 삶의 목표와 방향성을 상실한 아이돌 출신 청춘들의 제주 여행을 따라가는 남궁선 감독의 <힘을 낼 시간>, 2000년대 초반 대구를 배경 삼아 일본 음악을 매개로 친해지는 두 친구의 성장기를 들려주는 엄하늘 감독의 <너와 나의 5분>, 대학 진학에 유리한 농어촌 특별전형을 노리고 시골로 이주한 기준에게 일어나는 지옥에서 보낸 한철과도 같은 여름을 따라가는 장병기 감독의 <여름이 지나가면>, 주거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모순과 계급 갈등을 공포 장르를 통해 풀어낸 윤은경 감독의 <세입자>는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장만민 감독의 <은빛살구>는 강원도 묵호항 횟집을 배경으로 삼아 서로 복잡하게 얽힌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 급한 사정으로 일자리가 필요해 공장으로 취직한 주인공이 맺게 되는 새로운 관계들과 그로 인한 사건들을 Tango의 리듬으로 따라가는 김효은 감독의 <새벽의 Tango>, 그리고 전자파를 피해 남동생과 산속에서 사는 여자를 따라가는 박세영 감독의 <기지국>은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이강길 독립영화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되어 단편으로 완성했다가 장편으로 확장한 영화로, 박세영 감독의 실험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안재훈 감독의 신작 <아가미>는 올해 안시애니메이션영화제 국제경쟁에 초청된 바 있는데요. <아가미>를 페스티벌 초이스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배우 류현경이 배우이자 감독인 김충길, 그리고 뮤지션 김오키와 의기투합해 완성한 묘한 매력의 영화 <고백하지마>, 4개의 챕터를 통해 인물과 이야기가 뒤얽히는 실험적인 변주를 보여 주는 김경래 감독의 <이인>,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고향 제주로 내려온 딸 은영과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문숙희 감독의 <인생 세탁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휠체어 농구단과 선수들의 열정과 진심을 들려주는 고은기 감독의 <달팽이 농구단>까지 위 4편은 이번 페스티벌 초이스를 통해 처음 관객들과 만나게 되는 영화입니다.
올해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을 통해 소개되는 20편의 영화를 통해 한국 독립영화의 도전과 매력을 확인하시길 기대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4 프로그램위원회(가나다순)
김영우(서울독립영화제2024 집행위원 & 프로그래머)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2024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