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영화를 향한 열망은 계속됩니다. 2023년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장편 경쟁부문에는 152편의 영화가 출품되어 영화산업의 위기 속에서도 식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욱 불타는 열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코로나는 많은 영화인들에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했고 파도처럼 차례로 새로운 가능성들이 우리 앞에 당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주제적인 면은 물론이거니와 형식적으로도 다양한 시도와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들이 늘어났다는 인상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 영화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열정을 마주하며 4인의 심사위원들은 즐거운 고민에 빠졌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올해 역시 긴 논의 끝에 13편의 영화를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올해는 극영화의 다채로움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신동민 감독의 <당신으로부터>는 꾸준히 이어진 감독의 세계가 한층 확장되고 단단해졌다는 평을 이끌어냈습니다. 과외 학생과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심도 있게 그린 김경래 감독의 <레슨>, 사회복지사의 피로한 현실을 미니멀리즘의 이미지로 전달하는 이종수 감독의 <부모 바보>처럼 안정적인 완성도가 돋보이는 영화들도 눈에 띕니다. 전직 기자이자 장애 아이를 둔 엄마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이상철 감독의 <그녀에게>, 농촌 마을의 조용한 삶을 느리고 성실하게 담아낸 최승우 감독의 <지난 여름>, 독립한 딸이 경제적인 문제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 정리해고의 칼바람 속에서 버티는 삶을 설득력 있게 따라가는 박홍준 감독의 <해야 할 일> 등 사회에서 눈 돌리지 않고 삶을 비춘 영화들도 있습니다. 영화와 실험을 넘나드는 안선경, 장건재 감독의 <최초의 기억>을 비롯하여 김광인 감독의 <뿌리이야기>, 노영석 감독의 <THE 자연인>, 구파수 륜호이 감독의 <소리굴다리> 처럼 확실한 개성으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1편의 다양한 극영화, 특히 올해는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이는 작품들이 늘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진전과 변화를 선보였습니다.
다만 다큐멘터리는 작년에 비해 출품 편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출품작에서 인상적인 작품을 찾는 과정이 어려웠기에 못내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올해는 안전하고 익숙한 방식에 기댄 다큐멘터리보다는 다소 도전적인 작품을 선정하였습니다. 박수남, 박마의 감독의 <되살아나는 목소리>처럼 힘 있는 목소리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민아영 감독의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는 마지막까지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고 결국 이 작품이 지닌 진정성과 시의성의 힘을 지지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영화의 입지와 영토가 좁아짐을 느끼는 와중에도 열의 넘치는 올해 출품작들을 보며 작은 희망을 발견합니다.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작품들도 멀지 않은 시간 또 다른 자리에서 만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13편의 독립영화가 2023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유의미한 시간이 되길 기원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 2023 본선 장편경쟁 부문 예심위원(가나다순)
김영우(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
남다은(영화평론가)
송경원(씨네21기자)
정지혜(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