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독립영화제2025는 8편의 ‘새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섹션 이름이 무색해지지 않을, ‘새로운’ 면모들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들입니다. 먼저 강예은 감독의 <Vacation>은 이른바 ‘에세이 필름’입니다. 극영화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혹은 그러한 이분법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작품입니다. 내레이션, 영상과 사진, 푸티지와 시, 텍스트 그리고 속삭임. 이러한 요소로 구성된 이 작품은 영화의 ‘시간’이라는 테마에 대한 자유롭고 담담한 상상력입니다. 다큐멘터리로는 설수안 감독의 <마당이 두 개인 집>이 선택되었습니다. 감독의 전작인 <씨앗의 시간>의 연장선상에 있는 ‘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의 생명을 돌보는 살림 노동자의 모습은 일상의 소박하지만 거대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품고 있습니다.
6편의 극영화는 ‘극영화’라는 범주에 가둬 놓기에 예사롭지 않은 작품들입니다. 공리혜 감독의 <오후의 가정 음악>은 10여 년의 경력 단절을 겪은 여성 감독이 기록한 자신의 이야기이자, 딸과 함께 만들어 가는 유쾌한 일상이자, 삶의 열정에 대한 질문입니다. 영화의 자유분방한 전개는 관객에게 웃음과 함께 페이소스를 전합니다. 김지민·이선유 감독의 <환희를 기다리며>는 ‘춤’을 매개로 무용과 학생과 청소 노동자가 함께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관계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따스한 풍경은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10대의 이야기는 장편경쟁 부문뿐만 아니라 새로운선택에서도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어쩌면 최근 독립영화의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는데요, 한창록 감독의 <충충충>은 충동, 충돌, 충격으로 라임을 맞춘, 좌충우돌 틴에이저 영화입니다. 폭주했던 1990년대 유럽의 청춘영화를 일견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이미지를 다루는 솜씨와 스타일이 돋보입니다. 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은 ‘문제작’입니다. 교사의 아이를 임신한 소녀와 그의 친구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자신이 선택한 테마를 에둘러 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상황에 대한 어정쩡한 윤리적 접근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한 이 영화가 관객과 어떤 접점을 만들어 낼지 궁금합니다. 조현서 감독의 <겨울의 빛>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삶의 무게를 짊어진 10대 소년이 주인공입니다. 그의 삶엔 출구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가난한 삶 속에서 돈을 벌어야 하며, 동생은 장애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감독은 어설픈 희망이나 불가능한 구원 혹은 섣부른 위로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빛’을 감지하려는 듯, 거리를 두고 바라봅니다.
<나는보리>의 김진유 감독이 내놓은 두 번째 장편영화 <흐르는 여정>은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루한 교훈을 늘어놓기보다는, 주인공의 소소한 실천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관계와 울림을 보여 줍니다. 세상을 떠난 남편의 유품 속에서 살아가던 여성이 서서히 그것에서 벗어나 삶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바로 삶이자 ‘흐르는 여정’입니다.
새로운선택에서 상영될 작품들이 지닌 다양한 결들이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길 바랍니다. 그리고 상영관 불이 꺼진 후 감독과 관객 사이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길 원합니다. 그런 바람을 담아, 8편의 작품을 선정해 여러분 앞에 내놓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5 새로운선택 부문 예심위원(가나다순)
김영우(미쟝센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김형석(영화 저널리스트)
남다은(영화평론가)
모은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