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독립영화제2025의 페스티벌 초이스 단편 쇼케이스 부문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변화’입니다. 예년에 비해 규모를 키우고, 의미를 확장했습니다. 지난해 50주년을 기념하고 맞이하는 새로운 1년을 시작한다는 의지를 반영, 경쟁을 포함하여 세 부문으로 나눴던 단편을 두 부문으로 줄이면서 페스티벌 초이스에 관한 주목도를 높였습니다. 또한, 전액 삭감됐던 영화제의 예산도 복원하면서 좀 더 많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해 페스티벌 초이스 단편 쇼케이스 부문에 선정된 작품은 극영화 28편, 애니메이션 6편, 다큐멘터리 2편을 더해 총 36편입니다. 극영화에 쏠린 듯 보여도 극영화 안에서도 다양성을 고려해 선정한 까닭에 작품별로 서로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부문의 특징입니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는 프리미어 작품이 3분의 1에 가까운 10편이나 된다는 사실도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 부문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작품의 성격은 ‘위로’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인 격변, 입시 스트레스와 청년 취업과 가족 해체 등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사회 문제가 산적한 까닭으로 추정됩니다. <떠나는 사람은 꽃을 산다> <방랑자 환상곡> <유영> <알러지> <울지않는 사자> <호두나무> <비 오는 날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는 우리가 처한 현재를 직시하면서 빈틈을 통과한 한 줄기 빛처럼 위로의 순간을 제공합니다.
애니메이션이 주는 효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겨털고양이> <만복탕> <살아있게> <찐따밴드> <커피와 담배> <후잉>은 같은 장르로 묶이면서도 다루는 소재나, 접근하는 방식이나,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서로 다른 개성을 뽐냅니다. 불모지와 같았던 과거의 상황이 무색하게 저변이나 실력 면에서 매년 진화하고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물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올해 이 부문의 특징입니다. 오컬트물의 인기와 함께 <악령> <새출발>이 단편이라 가능한 새로움을 시도한다면 <정복당한 사람들>은 B급 정서와 결합한 한국형 SF를 선보입니다. <구덩이>와 <뿌리가 자란다>는 공포물의 외양을 취하면서 각각 성장과 재개발 역풍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주목할 만합니다. <층>은 정통 액션을, <허리케인 러브>는 로맨스를, <미장>은 가족애를 다루고 있어 익숙한 재미가 있습니다.
단편의 묘미 중 하나라면 장르와 장르 사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시도에 있을 겁니다. 어느 가족의 초상을 극과 다큐의 경계를 허물어 완성한 <벌레들>, 어느 장르를 갖다 붙여도 들어맞는 <몬스트로 옵스큐라>, 그와 다르게 어느 장르에도 종속하지 않는 <오른쪽 구석 위>, 치밀한 연출 가운데 배우의 자유로운 연기가 돋보이는 <진심으로>, 1980년 5월 광주와 1998년 5월 자카르타 배경을 병렬 구조로 연결한 <시네마 속 5월>이 그런 영화입니다.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하여 독립영화계에서 잘 알려진 영화인들이 참여한 작품도 반가움을 더합니다. 배우 최성은이 만든 <시온>, <성덕>으로 주목받은 오세연의 단편 <이상현상>, 늘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는 이준섭의 <어쩌다 이지경>은 예상 밖의 연출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하성국과 김시은이 출연한 <너와 나 사이의 바다>, 박종환의 <킥보드를 부순 자>, 김세원의 <울며 여짜오되>는 이들 배우의 명불허전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시지프스의 공전주기> <쓰삐디!> <스포일리아> <정과 망치>는 올 한 해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많은 관객과 만난 작품입니다. 기회가 닿지 않아 만나지 못했던 화제작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변화는 아무나 시도할 수 없어 미지의 감정을 주면서도 발을 디디는 순간 전에 없던 경험을 할 수 있어 짜릿함을 내주기도 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5가 페스티벌 초이스 단편 쇼케이스 부문에서 시도한 변화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5 프로그램위원회(가나다순)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2025 프로그램위원장)
박수연(서울독립영화제2025 프로그램팀장)
허남웅(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