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5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선정의 변

올해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부문에는 6편의 다큐멘터리와 16편의 극영화, 그리고 에세이필름 1편을 포함, 총 23편의 신작이 상영된다. 50회에 비해 3편이 더 늘었는데 매해 최다 출품 편수를 갱신하는 가운데 그만큼 각자의 개성과 매력을 지닌 작품들이 많았기에 오랜 고민과 논쟁을 거쳐 가능한 한 많은 작품을 상영하기 위해 고심했다. 지난해 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영화제 역시 많은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한 가운데, ‘예산과 거버넌스 회복’으로 대표되는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회복하며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를 준비하게 된 데에는 많은 창작자와 관계자,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의 관심과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이에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를 조망하는 보다 많은 작품들과 함께 ‘지금, 이곳’의 관심사와 문제의식들을 마주하고 영화를 통해 대화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편수 증가의 한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영화를 둘러싼 위기감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영화라는 세계를 위해 실험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영화들과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그렇듯 꽤나 행복한 경험일 것이다.

장률 감독의 신작 <루오무의 황혼>은 거장의 여전한 유머와 여유, 삶에의 성찰과 위로가 주는 매력으로 가득한 작품으로 올해 신설된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의 첫 번째 대상 수상작이다. 소설 『다른 여름』을 각색한 신수원 감독의 신작 <사랑의 탄생>은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흑인으로 태어나 피부색으로 인해 사회적 소수자로 차별 받으며 살던 세오와 그가 낯선 여행에서 만난 소라,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위무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남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남아 있는 엄마와 딸이 슬픔과 상실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담아낸 이광국 감독의 <단잠>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살아갈 용기와 위로를 전해준다. 이와 함께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와 그를 둘러싼 가족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담은 정승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철들 무렵>, 각자의 사정으로 어색하게 동거하는 인물들의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사실은 그 누구보다 거칠게 표류하는 삶의 파고를 발견해 가는 최혁진 감독의 <방랑자들>, 도쿄국제영화제 ‘아시아의 미래’ 부문 공식 초청작으로 여성이자, 청년이며, 보육원 출신인 민재가 자신 앞에 놓인 높은 차별의 장벽을 끝내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박용재 감독의 <내일의 민재>, 단편 <조의>가 확장된 장편 버전으로,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두고 생활고와 각자의 사연으로 장례를 먼저 치르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룸으로써 각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권용재 감독의 <고(故)당도>, 아내의 결혼과 출산으로 남편만 연기 활동을 이어 나가던 와중 아내가 배우 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생기는 연기자 부부의 에피소드를 다큐멘터리와 실사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솔하고 생동감 있게, 또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김준석 감독의 <그래도, 사랑해.>, 호러와 코미디를 절묘하게 결합한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 개교기념일>로 주목받은 김민하 감독의 또 한 번의 포복절도, 기상천외 학원 코미디 호러 영화 <교생실습>,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카메라와 섬광처럼 찾아 온 첫사랑, 그리고 이별과 비밀과 기억들, 한여름처럼 청량한 청춘의 시간과 성장의 과정을 담은 성스러운 감독의 <여름의 카메라>,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중년 레즈비언 만옥의 좌충우돌 이장 선거 도전기 속에 편견과 금기를 넘어 연대와 해방의 메시지를 담은 이유진 감독의 <이반리 장만옥>, 막걸리 양조장을 배경으로 사라진 누룩의 비밀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배우 장동윤의 장편 데뷔작 <누룩>, 불길한 예언과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나약함, 죄의식 등을 몰입감 있게 밀고 가는 배우 겸 감독 득양의 오컬트 공포 <발쩌>에 이르기까지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군 화제의 독립영화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야생 동물과 그들을 보살피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카메라에 담아온 왕민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은 1990년대생 여성들이 강원도 화천에서 사육 곰을 돌보는 삶을 통해, 인간과 동물, 생태적 삶의 미래 그리고 불안한 현재와 미래를 열심히 살아가는 동시대 청년들의 고민과 현실을 그린다. 故 박종필 감독을 기억하며 차별, 혐오, 참사의 현장을 재구성한 <스탠바이, 액션!>은 계속되는 투쟁의 기록이자, 동시에 소외되고 그늘진 현장에 언제나 묵묵히 존재했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에 대한 자기 반영적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곱창을 뜻하는 ‘호루몽’이라는 음식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 한국, 일본, 북한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재일 조선인의 역사를 재일 한국인 인권운동가 신숙옥 선생의 삶과 활동을 통해 돌아보는 이일하 감독의 <호루몽>,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 김우창의 사상과 삶, 사유에 관한 21년간의 기록,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 다큐멘터리의 면면 또한 범상치 않다.

팬데믹 이후 위기에 처한 영화의 미래에 대해 누구나 근심하였지만, 이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흔치 않다. 전 세계 영화인과 평생을 교류한 노구의 감독이 생애 최초로 카메라를 들고 ‘영화’와 ‘영화관’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김동호 감독의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에는 노구에 카메라를 들고 길 위를 걷는 ‘감독’과 팬데믹 이후 소외된(위기에 처한) ‘영화’가 묘하게 겹쳐있다. 씨네큐브 25주년 단편 프로젝트로 기획되어, 한국 영화의 현재를 대표하는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각자의 시선과 영화 세계를 통해 완성한 <극장의 시간들>은 영화와 극장, 그리고 극장과 관객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문제제기이다. 이와 함께 제목에서 감지되듯 시네필의 영화에 대한 지극한 애증의 고백이라 할 만한 오진우 감독의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그리고 매일과 같은, 하지만 누군가의 등장으로 특별해져 버린, 그럼에도 그마저도 언제나와 같은 어느 날의 뒤풀이를 그린 <오늘의 뒷;풀이>, 낯선 공간에서 만난 세 여성, 그들이 서로의 상처와 오해를 마주하면서 쌓아 가는 새로운 관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성장 드라마 <오늘의 카레>, 제주의 자연과 공존을 모색하는 사람들을 따라가며, 지역에 뿌리내린 청년 여성들의 현실과 꿈, 그리고 그들이 던지는 새로운 질문에 귀 기울이는 다큐멘터리 <제주의 시간> 등 세 편의 서울독립영화제 후반제작지원작을 포함한 네 편도 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관객과 만나게 된다.

 

서울독립영화제2025 프로그램위원회(가나다순)

김동현 / 서울독립영화제2025 프로그램위원장
김영우 / 미쟝센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모은영 / 서울독립영화제2025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