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연말의 시작을 알리는 12월 첫째 날, CGV압구정에서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2022가 개막했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몸은 움츠러들었지만, 독립영화계의 한 해 결산을 위한 자리인 만큼 축제 자리는 영화인들로 북적였다.
개막식은 이원 중계를 통해 CGV압구정 4관과 ART2관에서 동시 진행했다. 22년째 개막식 사회를 맡아 온 권해효 사회자가 어김없이 마이크를 들었다. 극장과 영화의 위기를 마주하며 비대면 개막식을 해야 했던 지난 2년과 달리, 상영관을 가득 메운 영화인들 앞에서 서울독립영화제2022의 정상화 개최를 알렸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의 슬로건은 ‘사랑의 기호’다. 저마다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서울독립영화제를 찾아온 관객들에게 아흐레 동안 영화의 의미를 자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위기 속에서도 안부를 묻고 위안을 주던 사랑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다시금 빛을 내기 시작한 시기, 또 다른 내일을 위해 영화는 오늘도 새로운 신호를 보낸다. 많은 언어가 힘을 잃어가는 요즘, 영화라는 공통분모가 사랑의 기호를 찾아 나서는 우리의 길잡이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글: SIFF2022 데일리팀 정희진
사진: 강민수, 최우창, 김조성
|
[INTERVIEW] ‘멀리 두고 오는 일’ – <겨울에 만나> 이승찬 감독
|
이야기의 시간 구성이 복잡하다.
영화를 찍으면서 시간에 대해 제일 처음 던졌던 질문은 ‘과연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는가?’였다. 시간을 이미지로 떠올리면 싱크홀이 생각난다.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밑에 있는 층이 위에 있는 층보다 나중에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개념 속에서는 과거와 미래는 상상 속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고로 나아갔다. 우리는 현재만 살고 있다. 과거와 미래가 상상이라면 이는 충분히 뒤엉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보여줄지 접근하면서 열역학 제2법칙 중 엔트로피를 떠올렸다. 간단히 설명하면 열을 내는 분자들이 무작위로 흩어져 있다면 어떤 공간은 뜨겁고, 다른 부분은 차가워야 한다. 그러나 한 공간에서 일정한 균형이 잡힌다. 무작위적이지만, 나름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영화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작동 방식이 몽타주와 닮았다고 느껴졌다. 이를 영화에 적용한다면 편집을 통해 시간을 뒤엉켜 놓을 수도 있고, 앞서 말했던 과거와 미래가 상상일 수도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롯들이 무작위적으로 얽혀 있지만, 이는 어떤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 SIFF2022 데일리팀 김민범
사진: SIFF2022 사무국
|
연주는 결국 연주만의 방식으로 할아버지와 이별한다. 감독님이 생각한 ‘연주의 애도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말을 건네는 행위. 어른들이 연주에게 ‘마지막이니까 인사드리라’고 하지 않나. 어찌 보면 강요 같을 정도로 계속. 그 말을 들으면서도 연주가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 건, 아직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도대체 어디 있는데, 어디다 대고 말을 하라는 거야’ 같은 심정이 아닐까 싶었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는 게 연주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 봤다. 두 번째론, 눈물. 모두가 다 울고불고 할아버지를 붙잡으려 하는데 연주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죽음을 인정하고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해야만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주가 어른들도 마냥 괜찮은 건 아니었구나 느끼고 할아버지의 수첩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때, 비로소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글: SIFF2022 데일리팀 김송요
사진: SIFF2022 사무국
|
[REVIEW]‘예술이 존재하는 자리, 우리가 존재하는 자리’ – <가정동> 허지윤
|
‘함께’라는 감각이 희미한 <가정동>의 세계에서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골목에 놓인 한 편의 시다. 젊은이는 시를 통해 화이트보드 뒤편의 시인을 떠올리고, 사람들로 가득한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의 존재를 체감한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사라진 시의 궤적을 따라가다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이어진다. 대화가 사라진 곳에서, 시라는 매개를 통해 대화를 찾아낸다. 모두가 각자 몫의 노동을 마치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세계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세계로의 변화. 이야기를 통해 부재한 타인의 자리를 상상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영화로의 변화. 우리의 존재가 언제나 대체될 수 있는 도시의 풍경에서, 영화 속 인물들은 존재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예술을 통해 대체 불가능한 주인공이 된다.
글: SIFF2022 관객심사단 김태현
|
[REVIEW]‘욕망을 마주하는 방식’ – <어린 양> 김영조
|
<어린 양>에서 고해소와 화장실은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니 영화는 오히려 화장실에서 인간은 더욱 적극적으로 고해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중략) 영화가 가혹하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욕망과 규범을 명확하게 갈라놓는 것이 그만큼 힘겨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욕망을 감추고, 애써 규범을 인식하고, 욕망과 규범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렇다고 <어린 양>이 사회와 규범을 모두 내팽개치고 당신의 욕망과 결행이 1순위라고 말하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욕망은 과연 감춘다고 사라지는 것일까? 우리가 욕망을 감추는 존재임을 인정해 보고 싶지 않은가? 솔직하고 발칙한 질문을 듣고 싶다면 기꺼이 이 영화를 추천한다. 나 혼자만 어떤 간극 사이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일만으로도 때로는 힘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글: SIFF2022 관객심사단 안민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