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5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1980’s-1990’s: 투쟁의 기록과 단편의 도약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
1980’s-1990’s: 투쟁의 기록과 단편의 도약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주최하는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은 2018년부터 초기 독립영화의 필름 복원과 상영을 통해, 독립영화의 유산을 기록하고 재조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28편의 필름 영화가 복원·디지털화되었으며, 51편의 작품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8회에 걸친 여정에서 1980~1990년대 제작된 다수의 8mm, 16mm 독립영화들이 발굴·조명되었다. 2019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8mm 스캔 작업이 불가능했으나, 독립영화 복원의 꾸준한 요구가 이어지며 이후 국내에서도 자체적으로 가능해졌다.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은 현역에서 활동하는 기성 영화인의 재발견 과정이기도 하였다. 1980~1990년대를 경유하며, 한국영화의 발전 이면에 새로운 영화를 열망했던 독립영화가 뿌리내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기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확산은 본 사업의 가장 중요한 성취라 할 것이다. 올해의 아카이브전 또한 그 연장선에서, 독립영화의 숨겨진 길을 재발견하고 인도하고자 한다.

2025년 여덟 번째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은 1980년대와 1990년대, 독립영화사의 중요한 시간을 각각 되짚는다. 시대별로 두 개의 묶음으로 진행되는데, 첫 번째 [독립영화와 민주주의] 섹션은 1980년대 독립영화 진영에서 제작된 두 편의 역사적 다큐멘터리를 선보인다. 1986년 <부활하는 산하>는 동학혁명에서 6·25, 5·18 광주를 거치며 한국의 근현대사를 민중·민족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연세대 총학생회의 요청으로 연세대 영화패가 제작하고 보급하였다. 기획, 연출, 편집은 이정하가 주도하였다. 완성 후 대학가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상영되었으나, 공안당국의 탄압에 직면하였고, 이어 서울영상집단 <파랑새> 사건을 점화시킨 전설의 작품이기도 하다. 또 한 편은 1988년 ‘영화공장 새벽’이 제작한 <전진하는 노동전사>이다. 1980년대 울산 현대그룹 계열사가 주도한 노동운동을 기록한 선전영화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나아가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노조결성 과정을 담고 있다. 전태일기념사업회의 후원으로 제작되었고, 민족영화연구소가 공동 배급하였다. <부활하는 산하>와 <전진하는 노동전사>는 8mm 필름 영화로, 2024년 민족영화연구소 회원이던 이수정의 자택에서 원본이 발견되어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되었으며, 2K로 복원되었다. 두 작품 모두 1980년대 이후 일반 대중에게 상영되는 것은 이번 서울독립영화제가 처음이다.

두 번째 [칸의 단편들, 독립영화의 도약]은 1998년과 1999년에 걸쳐 칸영화제에 초청된 다섯 편의 작품을 4K 디지털화하여 관객에게 소개한다. 2025년 한국 장편이 26편 만에 칸영화제에 한 편도 초청되지 못했다는 소식과 학생 경쟁 부문에서 진출한 단편이 1등 상을 받았다는 뉴스가 양립하였다. 승승장구하던 K-무비의 어두운 징조와 체면을 살린 단편의 고군분투는 한국영화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정확히 27년 전인 1998년, 조은령의 단편영화 <스케이트>가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여 크게 화제를 일으켰다. 단편영화의 경쟁 진출은 한국의 관객을 설레게 했으며, 장편 중심으로 기억되던 칸영화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하게 하였다. 이듬해인 1999년 칸영화제는 무려 네 편의 한국 단편을 파격적으로 초청하였다. 한국영화의 아름다운 기시감으로 기억되는 빛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세계 영화계가 향후 역동적으로 변모할 한국영화의 미래를 먼저 알아본 듯하다.

차례로 작품을 살피자면, 먼저 두 여성 감독의 작품이다. 한국영화 최초 칸영화제 경쟁 부문의 문을 연 조은령의 <스케이트>는 고요한 겨울을 배경으로 외로운 각자의 사정을 가진 소년과 소녀의 짧은 만남을 통해, 긴 정서적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하는 조은령의 작품은 논리적 계산을 뛰어넘는 영화적 영성을 갖는다. 1999년 칸에 초청된 김성숙의 <동시에>는 청계천을 배경으로 복권 장사를 하는 산재 노동자와 포르노테이프를 파는 10대 소년의 관계에서, 인간의 욕망과 삶의 리얼리티를 관찰한다. 감독 자신의 노동운동의 경험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동성애를 배경에 둔 작품이다. 다음으로 김대현의 <영영>은 아들의 시신을 앞에 둔 어머니의 비통함을 영화적 이미지와 사운드로 표현하며, 삶과 죽음 사이에 복잡한 시간과 감정을 포착한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인 김대현 감독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작품이다. 송일곤의 <소풍>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절망을 은유한 영화로, 비슷한 시기 단편영화의 경향을 대표한다. 1999년 칸영화제에서 한국 최초로 경쟁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하였다. 네 편의 작품 모두 35mm 필름 영화로서 깊이 있는 화면의 질감을 보여 준다. 마지막 한 편은 학생 경쟁 부문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된 이인균의 <집행>이다. 새로 부임한 젊은 신부가 어린 사형수의 종부성사를 맡게 되며, 믿음과 진실의 경계에서 내면의 갈등을 겪는 내용이다. 심오한 주제에 걸맞게, 고도로 세공된 16mm 영화이자 영상원 1기생의 졸업 작품으로서 주목받았다.
1980년대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1980년대 중반 영화 운동 진영의 뚜렷한 변화를 반영한다. 1980년 극영화 습작에 집중되었던 영화 운동은, 1980년 사회적 사건을 분수령으로 생동하는 노동 현장을 기록해야 하는 책무를 안팎으로 요구받았다. ‘영화’와 ‘운동’은 분리되어 있지 않았지만, 주체들은 치열하게 갑론을박하며 각자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두 작품은 1980년 ‘광주 비디오’와 1988년 <상계동 올림픽> 사이에서 독립 다큐멘터리의 진화를 증언하는 주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1990년대 다섯 편의 단편영화는 1997년 경제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한국영화의 미래를 보여 주는 상징적 작품들이다. 2000년 이후 한국영화는 파죽지세로 성장하였지만, 그것을 예비하고 문을 열었던 새로운 영화에 대해서는 인색하였다. 그 결과 K-콘텐츠의 승승장구 가운데, K-무비의 자리는 현재 절대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과거가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27년·26년 전 독립영화·단편영화라는 이름으로 한국영화의 존재를 알렸던 작은 영화들 가운데, 우리가 간과했던, 가능한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2025 프로그램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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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아카이브전1]
부활하는 산하 이정하 | 1986 | Documentary | Color+B/W | 8mm-DCP | 90min

[독립영화 아카이브전2]
전진하는 노동전사 전태일기념사업회, 영화공장새벽 | 1988 | Documentary | Color+B/W | 8mm-DCP | 40min

[독립영화 아카이브전3]
스케이트 조은령 | 1998 | Fiction | B/W | 35mm – DCP | 10min
동시에 김성숙 | 1998 | Fiction | Color | 35mm – DCP | 19min
영영 김대현 | 1999 | Fiction | Color | 35mm – DCP | 9min (N)
집행 이인균 | 1998 | Fiction | Color | 16mm – DCP | 20min
소풍 송일곤 | 1999 | Fiction | Color | 35mm – DCP | 18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