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의 로컬시네마 부문은 2022년 신설 이후, 지역의 이름으로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을 꾸준히 주목해 왔습니다. 올해에는 지역영화로 분류된 총 261편의 출품작 중 13편의 영화를 선정했습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감독의 영화, 지역의 자원과 자본으로 제작된 영화, 혹은 지역의 삶과 정서를 품은 작품들입니다.
지역영화는 언제나 넓고 복잡한 범주 안에서 오해받기 쉽고, 때로는 호도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변방’, ‘타자’, ‘소수’, 혹은 ‘촌스러움’이라는 낡은 관념과 싸우며 존재해 왔습니다. 사실 로컬시네마는 배려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상상력을 증명하는 현장입니다. 더 적은 예산과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적 순간을 포착해 내는 이 결핍의 공간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큰 창작의 자유와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영화제가 로컬시네마 섹션을 지속하는 이유 또한 단순한 보호의 제스처만은 아닐 것입니다. 독립영화가 제작 지원제도와 영화학교 시스템 안에서 정형화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로컬시네마는 여전히 ‘다르게 만들기’의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이는 독립영화가 지켜 온 근본적인 윤리이자 태도이기도 합니다.
올해 심사는 ‘지역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어떻게 작품에 구현되었는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지역을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 안의 기억과 정서,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장소의 의미로 전환시키고 있는가를 세심하게 살폈습니다.
그 결과 선정된 13편의 작품은 각기 다른 호흡과 개성으로 이 질문에 응답합니다.
청춘의 고민을 소소하지만 담백하게 길어내며 소규모 현장의 모범 답안을 보여 준 〈커뮤니티〉,
감독 지망생이라는 ‘사골 소재’의 장벽을 동어반복 없이 유머와 스타일로 유쾌하게 돌파한 〈몽중몽〉,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놀라운 순간을 담담하지만 가슴 찌릿하게 포착한 사적 다큐 〈웰컴 투 마이 홈〉,
느슨하게 연결된 인물들을 통해 가족과 집의 의미를 사려 깊게 직조한 〈당신의 집으로〉,
아름다움과 불안이 공존하는 접경 지역의 긴장을 미니멀한 연출로 감각화한 〈산행〉,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담아낸 〈시위합시다〉,
애도의 정서를 고요히 담으면서도 단편영화의 형식적 미덕을 살린 〈모모의 택배〉,
별다른 대사 없이도 아름다운 작화와 유려한 전개로 한 시기의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낸 〈지나가는 것〉,
탁월하게 구현한 장소성과 소녀의 성장 서사를 아름답게 교차시킨 〈소양강 소녀〉,
깊고 복잡한 감정의 요동을 군더더기 없이 단단한 울림으로 전달하는 〈사랑하는 그대, 이제 순댓국을 먹는가?〉,
투박하지만 진정성으로 분단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응시하는 르포르타주 〈경계와 사이〉,
부동산 공화국의 천박함을 향한 용감하고 신랄한 접근 〈신도시케이〉,
원주 아카데미를 둘러싼 무도한 현실을 기억하고 저항하는 가장 영화다운 방법 〈환상극장〉이 그들입니다. 각 작품의 다채로운 개성과 진정성은 지역마다 다른 호흡과 리듬으로 빛났습니다. 심사를 통해 이를 지켜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고 즐거운 자극을 주었습니다.
2025년의 한국영화는 ‘위기’라는 단어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지역영화 생태계는 2019년부터 이어져 온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영화 지원사업이 예고 없이 폐지되면서 그 위기조차 아득히 넘어, 이제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정권이 바뀐 지금도 지역영화 예산 복원의 가능성은 요원해 보입니다. 지역영화를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언제든 지원을 철회할 수 있는 부차적 영역으로 간주하는 행정편의적 시선은 이제 교정되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로컬시네마는 독립영화 창작의 또 다른 가능성이자 돌파구입니다. 올해 선정된 13편의 영화도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결핍의 자리에서 피어난 자유, 색다른 시선, 그리고 그 너머의 가능성을 담은 13편의 작품을 즐겁게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결핍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영화를 만들고 있을 수많은 지역 영화인들의 노고에 연대와 응원, 그리고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 2025 로컬시네마 부문 선정위원회(가나다순)
박채은(독립미디어연구소 공동대표)
이세진(프로듀서)
이승우(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