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18에 출품된 장편 작품의 수는 119편입니다. 근래 경향대로 극영화가 70편으로 다수를 차지했으며,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에 해당하는 작품도 49편으로 꾸준히 영역을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예년과 다른 특별한 경향을 발견하기는 힘들었으나 몇 가지 소재와 주제가 심화되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하나는 빈곤의 일상화입니다. 청년의 일자리 수준에서 좀 더 나아가, 한국인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고민한 영화가 많았습니다. 현실을 외면하는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영화 진영에서 빈곤의 문제를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것은 진심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또 하나는 여성이 주체가 되는 영화의 홍수입니다. 사회 정치적으로 여성이란 화두가 뜨거워진 만큼 현실이 짙게 반영된 결과일 것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주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체,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 등 모든 면에서 여성이 중심에 선 영화를 거푸 대면하는 바, 이런 상황이 보다 진보되고 발전된 미래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4명의 장편 예심위원은 119편의 장편영화를 놓고 몇 차례에 걸쳐 선택의 작업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 10편의 본선경쟁 부문 상영작을 뽑았습니다. 먼저, 네 편의 다큐멘터리는 각기 다른 공간과 시간을 빌려 한국 사회를 흥미진진하게 되돌아봅니다. 한 청년이 갓 입대한 순간부터 제대하기까지의 시간을 뒤따라가는 <군대>는 TV의 시시한 군대 쇼와 대비됩니다. 감독의 내레이션과 청년의 병영 생활이 도리어 맞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군대 다큐멘터리는 한 남자의 심리극으로 화합니다. <졸업>은 얼핏 보기에 한 사립대학교의 부정한 재단을 고발한 기록물입니다. 그런데 10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영화는 점차 매크로한 사회 읽기로 변모하고, 마이크로하게는 한 청년의 성장담으로 기능합니다. <길모퉁이가게>에서는 자본주의의 욕망이 빚은 ‘우리의 실낙원’과 마주합니다. 시스템의 아웃사이더로 자립하려던 청년들이 도시락을 배달하는 기계로 변모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깊은 슬픔입니다. <김군>은 과거의 역사를 담는 새로운 그릇으로서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사진에 박힌 인물을 찾아가는 여정은 1980년의 시간으로 돌아가도록 이끄는데, 과거의 기억을 더욱 매력적인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명징함보다 모호함입니다.
네 편의 다큐멘터리를 선택하는 과정과 비교한다면, 여섯 편의 극영화는 더 많은 토론을 요구했습니다. <겨울밤에>에서 우리는 근래 등장한 흥미로운 감독의 변화를 목격했고 그것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부지런함마저 겸비한 작가입니다. <밤빛>과 <작은 빛>은 한국 독립영화의 대지에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지 방증하는, 미지의 작가의 최전선에 놓인 감독들의 작품입니다. 가족의 이야기에 공히 ‘빛’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두 작품은 영화가 빛의 예술임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전자가 선의 여백에 빛이 스며든 수묵화 같다면, 후자는 빛의 움직임에 맞춰 읽는 가족일기처럼 느껴집니다. <아워바디>는 제목 그대로 그녀들의 육체에 관한 선언입니다. 논리적인 귀결을 따지기보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받아들였던 무게를 서슴거리지 않고 드러냅니다. <보희와 녹양>은 미소와 함께하는 귀여운 작품입니다(소년의 이름이 ‘보희’랍니다). 소년과 소녀의 로드무비는 도달한 지점보다 그 여정에서 풍요로운 진실들을 전달합니다. <메기>는, 신선함의 끝에서 어디로 데려갈지 기웃거리다 보면 문득 어딘가에 도착해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그것이 장난인지 조롱인지 모호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음을 떠올렸습니다.
119편의 작품 중 단 10편의 작품이 선택되었습니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예심위원들은 나머지 109편의 작품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소수의 작품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일 것입니다. 낙담치 마시고 다음 작품으로 새로운 문을 열어나가시길 기원합니다. 영화제 또한 더욱 넓은 문을 만들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본선경쟁 부문 장편 예심위원(가나다순)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2018 집행위원장)
남다은(영화평론가)
모은영(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이용철(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