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산역

서울독립영화제2024 (제50회)

단편 쇼케이스

조용규 | 2024 | Fiction | Color | DCP | 7min World Premiere

TIME TABLE
12.1(일) 14:20-15:43 CGV압구정(신관) ART2관 GV, 12
12.3(화) 15:10-16:33 CGV압구정(본관) 3관 GV, 12
SYNOPSIS

남자는 항상 말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말을 들어주는 대상은 분명하지 않다. 정해진 것이라곤 전철 안에서 말하는 것뿐.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서을 외곽을 관통하는 경의중앙선 전철에 올라탄 남자는 뚜렷한 대상 없이 출입문 유리창 앞에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몽골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의 말들은 계속 반복되거나 변형되고, 우주까지는 알지 못하는 그는 자기가 느낀 지구의 이치에 대해서 독백하듯 ‘말’을 뱉어낸다. 고통스럽기도 하고 내용들도 오락가락하는 ‘말’들. 남자의 얼굴은 때때로 슬프고 처연하다.

DIRECTING INTENTION

파주에 살고 있는 나는 때때로 경의중앙선을 타고 서울로, 양평으로 갈 때가 있다. 어느 날 전철 안에서 혼잣말하는 여자를 봤다. 그녀의 말은 또렷했지만 길게 이어가지 못하는 말은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핸드폰 너머의 친구에게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은 웃음기가 가득했다. 계속해서 반복하는 말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또 같은 시간대에 같은 출입문으로 올라타는 여자를 봤다. 여전히 여자는 말들을 전철에 올라타자마자 핸드폰으로 쏟아냈다. 며칠 전과 같은 내용인지 헷갈렸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말들. 알 수 없지만 매우 기묘한 느낌을 받고 핸드폰 메모장에 기억을 더듬어 여자가 한 말들을 기록했다. 아마도 많이 왜곡된 기억일 것이다. 그 한순간의 느낌을 만들고 싶었다.

FESTIVAL & AWARDS

World Premiere

DIRECTOR
조용규

조용규

2010 Bang!
2018 사거리
2019 얼굴들

STAFF

연출 조용규
제작 박미현
각본 조용규
촬영 조용규
편집 이윤지
동시녹음 도유안
음악 박이현
믹싱 김시현
출연 박종환
프로듀서/제작부 류수동, 조정찬

PROGRAM NOTE

입 밖으로 걸어 나간 말은 대체로 목적지가 존재한다. 반대편에 앉은 단 한 사람,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 때때로 보다 멀리 퍼지기를 바라는 말들도 있다. <곡산역>에 등장하는 남자의 말은 홀로 어슬렁거린다. 도착지 없이, 불완전한 문장 형태로. 지하철 안 남자의 독백은 덜컹거리며 회색 소음 사이로 사라진다. 카메라는 같이 흔들리며 경의·중앙선을 떠도는 남자의 찰나를 포착한다. 그의 파편적인 말 속에는 몽골이 자주 등장한다. 욕할지 말지, 살지 말지, 갈지 말지, 혼란한 와중에도 몽골은 남자에게 구심점으로 작동한다. 남동쪽으로 나란히 누운 풀들을 바라보며 그는 겨울철 시베리아 기단을 따라 내려온 북서풍을 상상한다. 한랭 건조한 바람의 시작점에는 몽골이 존재한다. 그가 존재했던 몽골에서는 별도, 달도 밝기만 했다. 지금 여기와는 다르다. 영화 내내 멈춘 적 없던, 먼 곳을 상상하는 그의 독백은 일산역 도착 방송과 함께 정지한다. 일순 그의 표정은 애처로워진다. 영원회귀하듯 일산역을 출발해 다시 일산역으로 돌아온 그에게 곡산역은 영영 닿을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린다. 범위를 우주에서 지구로 좁히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상상해 봐도 목적과 목적 사이를 정차하는 지하철 안에 묶인 그는 결국 아수라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혼란한 그의 마음 상태와 배회하는 말들, 시종 흔들리는 지하철은 서로 조응하며 카메라 위에서 잠시 만난 슬픔을 증폭시킨다.

김민범 / 서울독립영화제2024 데일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