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더 시험

서울독립영화제2011 (제37회)

본선경쟁(단편)

김보라 | 2011|Fiction|Color|HD|28min30sec

SYNOPSIS

가족들에게 별다른 애정을 받지 못하는 9살 은희는 리코더 시험을 잘 봐 칭찬을 받고 싶다.

DIRECTING INTENTION

아주 작은 햇볕에도 들꽃은 꽃을 피운다.

FESTIVAL & AWARDS

2011 제17회 DGA (Directors Guild of America) Student Film Award
2011 제12회 우드스탁필름페스티벌/학생영화 부문 대상
2011 제12회 대구단편영화제/대상, 연기상
2011 제10회 미쟝센단편영화제/심사위원특별상, 심사위원특별연기상

DIRECTOR
김보라

김보라

2002 <계속되는 이상한 여행>

2003 <빨간 구두 아가씨>

2004 <귀걸이>

2009 <에이코> 

STAFF

연출 김보라
제작 조수아
각본 김보라
촬영 김구영
편집 김태욱, 김보라
조명 오태석
미술 이지연
음향 전상준
음악 페비안 알마잔
출연 황정원, 박명신, 정인기
조연출 윤도연
믹싱 한명환

PROGRAM NOTE

우리는 언제쯤 그늘 밖으로 한 걸음 나가는 법을 익혔던 걸까. 잘 기억나지를 않는다. 1988년의 여름이었 다. 주황색 공중전화기를 줄 서서 기다렸다가 전화를 하던 시절이었다. 지난해의 박종철 사건과 6.29 발표와 대선후보 단일화의 실패는 많은 금지곡의 해제와 직선제 개헌, 종일방송의 시작과 대한항공 폭파사건 등으로 뒷전에 밀렸다. 유재하가 죽었고 대선과 총선이 그렇게 지나가고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신다고 기형도는 적었다. 올림픽으로 여름 끝이 찬란한 길가에서는 담다디가 흘렀고 개막 하루 전 있었던 화성에서의 살인사건은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리코더 시험’은 그 한 복판에 있던 소녀 ‘은 희’의 이야기이다. 왜 영화의 시작이 전화였을까? 은희는 리코더를 가지고 오지 않아 두 팔 들고 벌을 선다.
주어지는 하나의 조건. 신탁처럼 은희에게 리코더 시험이 내려지고 은희는 노트에 적는다. ‘리코더 시험’이 라고 이게 이 영화의 제목이라고 은희의 작은 손은 꾹꾹 연필을 눌러 적는다. 일요일. 아빠와 엄마는 사이가 좋지 않다. 엄마의 첫 등장은 창 밖에서였다. 일요일에도 일하는 엄마는 아빠를 의심한다. 아빠는 엄마 모르게 다른 사랑을 고백한다. 은희는 엄마에게 거짓을 말한다. 왜 일까? 은희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차려 입고 나가는 아빠를 보며 은희는 거짓말의 이유를 가슴 아프게 고백한다. ‘나도 사랑해!’ 은희는 노크까지 하는 친구 한나의 엄마도 부럽다. 한나에게는 부끄럽지가 않게 많은 걸 말한다. 은희는 한나를 따라 해보기도 한다. 방앗간. 은희는 100점 시험지를 꺼내 들고 리코더를 새로 사야겠다고 말하지만 바쁜 아빠는 쉽게 답을 해주지 않는다. 다만 아이스크림 값을 준다. 언니는 남친을 데리고 몰래 들어오고 은희는 옷장에 들어가서 잔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은희는 오빠에게 부당하게 매를 맞고 옷장 속에서 운다. 아빠는 울고 있는 은희에게 놀라운 말을 한다. 은희는 야밤에 리코더로 테러를 한다. 리코더 연습도 하지 않고 한나 에게 삐친 은희는 집에 돌아와 옷장 속에서 잠이 들었다가 엄마를 만난다. 그리고 엄마에게 묻는다. 애절하고 간절한 질문에는 확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은희는 아침 운동을 마치고 풀어진 신발 끈을 묶어주는 아빠를 향해 생전 처음처럼 손을 뻗는다. 조금 놀라기는 하지만 은희는 아빠의 머리칼을 분명 쓰다듬었다.
아침, 모든 식구가 모여서 아침밥을 먹는다. 햇살은 여유 있고 찌개와 밥은 따뜻하게 덥다. 잘 먹는다. 학교에 간 은희는 리코더 시험을 치른다. 드디어 은희의 차례. 은희의 리코더는 예전 그대로지만 은희는 리코 더를 연주한다. ‘후후’ 하지 않고 ‘투투’ 하면서 말이다. 영화의 중반부에는 인상적인 세 개의 컷이 무심하게 연결되어 있다. 교실의 책상. 빈 복도. 빈 학교의 운동장. 그리고 은희는 문구점의 리코더를 보다 텅 빈 집으로 간다. 빈 안방을 열며 은희가 엄마를 부를 때, 은희의 마음은 얼마나 비어있었을까? 빈 구석을 채우는건 오빠의 폭력이고 아빠의 무관심이다. 호소가 통하지 않을 때, 야밤의 테러는 당연한 거다. 이러한 커트의 연속은 후반부에 한 번 더 반복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커트는 세 개가 아니고 두 개이며 음악과 동반하는 형식은 동일하지만 대상은 빈 골목이고 멀리 있는 은희의 집이다. 그 순간의 앞과 뒤에는 사랑의 확신과 사랑에 대한 시도가 있다. 불안에 가까운 사랑을 확인하는 법은 아마 가까운 그곳에서 찾아지는 지도 모른다. 그늘 밖으로 나가는 법을 익혔던 게 언젠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여전히 그 휘어진 그늘 안에서 울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어여쁜 구석을 안아주던 마음을 다시 만난다면 은희처럼 한걸음 앞으로 나갈 수도 있겠다. 그리고 역시 영화는 필름으로 살살 찍는 것이 좋다.

이난/서울독립영화제2011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