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의 사계절

서울독립영화제2017 (제43회)

경쟁부문 장편

허철녕 | 2017 | Documentary | Color | DCP | 104min (K, E)

SYNOPSIS

죽음의 문턱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90세 김말해의 성장 다큐멘터리. 영화는 과거 보도연맹 학살부터 현재 송전탑 반대 투쟁까지,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들 속에서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저항했던 한 여성의 삶을 쫓는다. "글만 알았다면 내 인생도 앞, 뒤가 안 있겠나."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말해의 고백이 시작된다.

DIRECTING INTENTION

이 영화의 주인공 김말해 할머니는 <밀양을 살다> 라는 생애구술사 프로젝트의 영상 기록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고목을 닮은 듯 한 할머니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한 번, 할머니가 견뎌온 폭력의 역사에 두 번 놀랐다. 그러나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정작 사소한 부분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말해 할머니가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말해가 자신을 인터뷰한 신문 기사를 보여준 적이 있다. 거의 지면 한 페이지를 다 할애할 만큼 말해의 굴곡진 역사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말해는 신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곤 마치 골동품을 다루듯 고이 접은 신문을 검은 비닐 봉투에 담아서 장롱 속에 넣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녀의 뒷모습은 어쩐지 서글퍼 보였다. 자신의 역사를 읽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런 모순된 현실과 감정들이 연출자로서 이 영화를 만들게 하였다.

FESTIVAL & AWARDS

2017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DIRECTOR
허철녕

허철녕

2010 <명소>

2011 <홍역괴물>

2012 <옥화의 집>

2014 <밀양, 반가운 손님>

STAFF

연출 허철녕
제작 조소나, 정윤석
촬영 허철녕
편집 허철녕
음악 강이다
번역 마크 브라질, 윤다슬
출연 김말해, 전희도

PROGRAM NOTE

‘말해’는 밀양 상동면 도곡 마을에 사는 할머니 김말해의 이름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 관련한 영화들에서 우린 이 할머니를 곧잘 마주치게 된다. 할머니들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에 속하고 허리는 심하게 굽었으며 늘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느릿느릿 거동하지만 격렬한 현장에서 누구보다 가장 자주 목격되는 주민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영화는 김말해 할머니에 관한 기존의 모습을 되풀이하는 대신 그녀의 사적인 삶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말과 표정을 담아 그녀의 역사를 전한다. 남편은 보도연맹에 휘말려 실종됐고 시어머니는 실종된 아들을 찾다가 세상을 떠났다. 김말해 할머니와 큰아들 사이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고 작은아들은 수년 전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영화는 김말해 할머니의 슬픈 생에 관한 영상 수기는 아니다. 영화는 대부분 그녀의 삶의 리듬을 충실히 따라간다. 산비탈에서 고사리를 캐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시작한 영화는 열매를 따고 멍하니 누워 잠을 청하고 자다 일어나 앉아서 담배를 물고 소주 한 병에 목을 축이고 지나가는 경찰들을 향해 욕도 한마디씩 던지는 그야말로 그녀의 일상을 담는다. 그런데 아름답게 담는다. 서럽고 힘겨운 삶을 아름답게 찍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정한석 / 서울독립영화제2017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