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한국독립단편영화제 (제25회)

현실과 판타지

최하동하, 이경순 | Beta | 칼라 | 58분 58초 | 1999년 | 삼성 디지털 카메라상

SYNOPSIS

영화의 첫 장면은 감독의 요청에 의해 이 영화의 제목을 짓고자 말씨름하는 농성장의 유가협 회원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소소한 일상의 단면이 이 다큐멘터리의 덕목을 예고한다.

늦은 밤 농성장의 삼십촉 백열등 아래, 자식잃은 부모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름의 사연들을 펼쳐놓는다. 그곳에서 노동열사 고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구수한 입담도 들을 수 있다. 늙고 지친 일흔이 넘은 노구이지만 그 카랑카랑한 언변만은 여전히 살아있는 이소선 여사. 죽은 아들 이한열의 기사와 함께 실린 자신의 사진이 웃는 모습이라는데 화가 나 있는 배은심 회장에게 "찍을 때 성내지 그랬어"라며 농을 던질 여유도 보인다. 다시 떠오르는 그 때의 아픔에 침묵하는 배은심 회장의 모습에서 영화는 1987년 그 격동의 현장으로 돌아간다. 스러져가는 수많은 죽음들, 그들을 좇아 싸우고 투옥되는 험한 세월을 감내해 내는 그들의 부모형제들.... 짧게는 이삼년에서 길게는 삼십년에 이르는 그 눈물의 세월이 그들에게 있었다.

김대중정권이 들어서자 자신들의 생전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다급함으로 "죽은 이들의 정당한 역사적 평가와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농성이 진행됨에 따라 국회회기안에 처리하리라 했던 법안의 통과는 불투명해 진다. 농성 장기돌입에 대한 찬반회의가 열리고 회원간의 첨예한 의견대립이 수면위로 드러나는데.....

DIRECTOR

최하동하, 이경순





프로그램 노트

그 곳에는 이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따. 70년대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살랐떤 전태일에서 부터 허완근, 신호수, 조성만, 김윤기, 박창수...이름도 다 헤아릴 수 없는 그 수많은 죽음들이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소리없이 모여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 그 기나긴 투쟁 속에서 조금씩 비껴나있던 우리들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말하며 일상에 파묻혀 잇는데, 가슴 속에 자식의 주검을 묻은 그들의, 아니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차가운 콘크리트에 몸을 누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수많은 죽음들을 단지 슬픔으로만 떠올리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의 재단에 바쳐진 죽음이라고 누군가는 그렇게 한 마디로 경의를 표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그들을 왜 죽였는가이며, 군사정권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졌다고 하는 이 정권은, 그리고 지금의 시간을 사는 우리들은 그들의 죽음에 대해 최소한의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닌가. 죽음과 바꾸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대가이겠지만, 그들의 죽음에 올바른 이름을 붙이지 못한 지금, 우리는 80년대로부터 얼마나 변해왔는가. 이경순씨는 '80년대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민들레'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랬다. 단지 시간만이 아닌 '80년대'를 우리는 너무 쉽게 떠나보냈던 것은 아닌가.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자식을 잃은 부모가 이렇게 웃도 되나'를 말하는 어머니를 앞에 두고, '유가'은 인기가 없다'며 쓸쓸해하는 아버지를 앞에 두고 어떻게 여전히 진행중인 이 죽음들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나. 고통스러운 영화보기. 그랬다. <민들레>를 앞에 두고 나는 지나왔떤 나의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영웅이었고 투사였고 그리고 지금은 열사라 이름 붙여진 수많은 나의 선배들과 동기들과 후배들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통곡에 눈시울이 뜨거워져 고개를 돌리다 생각했다. 눈 돌리지 말자. 아직도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소리없이 꼬여있는 그리운 얼굴들을. 그 피맺힌 어미의 가슴을 절대 외면하지 말자. 홀씨처럼 이 마음이 세상으로 퍼지는 그 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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