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새로운선택 장편

유승원 | 2023 | Fiction | Color | DCP | 77min (E) World Premiere

TIME TABLE
12.2(토) 20:20-21:37 CGV압구정(신관) ART2관 E, GV, 12
12.4(월) 15:10-16:27 CGV압구정(신관) ART1관 E, GV, 12
12.7(목) 11:20-12:37 CGV압구정(신관) 4관 E, 12
SYNOPSIS

재혼 가정에 적응하지 못해 성인이 되자마자 배우의 꿈을 이유로 집을 나와 작은 극단에서 생활하는 승원. 오랜 시간 녹록지 않은 극단 생활을 이어가던 중 7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갑작스레 듣게 되고 충동적으로 극단을 나와 어릴 적 살던 친가족의 집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 이복 남매인 가현이 갑작스레 승원을 찾아오고, 자신의 노량진행을 이유로 새엄마의 집으로 돌아오라는 제안을 하면서 승원은 이전의 꿈과 가족에 대해 다시금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DIRECTING INTENTION

음악을 하시는 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둘 다 술에 취해 여러 얘기를 하던 중 선생님이 말했다. “승원 씨는 꿈이 있네. 그 나이는 꿈꿔도 돼요. 그게 제일 평범한 거야.” 술에 취해 있을 땐 꿈을 꾸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 술이 깨면 다시 꿈을 위해 살아야만 한다. 꿈이 있는 건 아주 좋은 일이지만 꿈을 위해 사는 건 하루가 지날수록 지쳐만 간다.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어쩌면 허황한 꿈을 보고 의미 없는 달리기를 하는 게 아닐까. 가끔은 꿈이 없는 사람들이 부럽게 느껴진다. 반대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하고 싶은 게 있잖아.” 그리고 그들 다수는 비슷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꿈이 없는 청년이 평범하고 꿈이 있는 청년이 특별하다는 말이 아니다. 꿈의 유무를 떠나 현실의 불가항력이 청년을 달리게 만들고 조금씩 지쳐간다. 불가항력으로 달리고 있는 이 사회의 모든 청년은 결국 평범한 개인일 뿐이다. 그들이 달리기를 멈추는 이유는 고요한 호수에 작은 돌을 던졌을 때 물결이 천천히 호수의 경계까지 퍼지듯이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그들에게 멈춘 이유를 물어보면 그들의 입에선 “그냥.”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온다. 그렇게 이루어진 잠깐의 휴식에 그들은 길을 잃는다. 이 사회의 평범한 청년이야말로 이런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자 가장 친밀하다고 불리는 가정은 평범한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이전 세대의 가정에 비해 현재의 가정은 과연 방황하는 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만한 힘을 지녔을까. 동시에 현실의 불가항력에 이끌려 가는 청년들은 가정이라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을까.

FESTIVAL & AWARDS

World Premiere

DIRECTOR
유승원

유승원

2021 딥슬립커피

STAFF

연출 유승원
제작 이명교
각본 유승원
촬영 김찬우
편집 유승원
조명 원기륜
음향 남호진
미술 윤희정
음악 장현호(Haeno)
출연 유승원, 정가현, 이영석

PROGRAM NOTE

서먹한 이복 남매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재회한다. 그들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아버지의 흔적이 있는 시골집을 찾고 얼마간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를 한다.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이는 승원(유승원)과 그가 외면해 온 질문을 던지는 가현(정가현). 그뿐, 이들 사이에 이렇다 할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건조하고 서늘한 이들 관계만큼 집 안팎의 풍경 또한 스산하다. 주인을 잃은 살림살이는 정리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고 집 밖 창고에는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 누군가의 묵직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겨울 호수는 의뭉스럽고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대문 밖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의 얼굴조차 정지 화면처럼 꿈쩍 않고, 서로를 보는 시선 또한 메말랐다. 살아 있으나 감정적으로 죽어 있는 기이한 상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공간. 그 속에서 <아가미>는 끊임없이 해빙을 탐색하고 시도하고 갈망한다. 그 유일한 방편은 이 영화의 카메라. 영화에 등장하는 필름 카메라는 회상의 매개로, 대화의 물꼬로, 위태롭고 돌연한 출현으로, 애틋한 한순간으로 자리를 바꿔 가고 변모하며 이 영화의 유일한 사건이 된다. 여기에 <아가미>의 정제된 숏, 프레임 운용과 카메라 움직임이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던 일상에 점진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고 미세한 파동과 균열로까지 이어지더니 마침내 꽝꽝 얼어붙어 있던 영화의 표면에 파문을 일으킨다. 고유한 뉘앙스를 구축하며 어느새 해빙의 꿈에 이른 영화는 그렇게 정적을 깨고 흐르는 물을 품는다.

정지혜 / 서울독립영화제2023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