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없는 삶

서울독립영화제2012 (제38회)

특별초청2

김응수 | 2012 | Documentary | Color | HD | 80min

SYNOPSIS

이 영화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1945년, 한국의 최북단 나남(함흥, 청진)에서 출발하여 서울, 부산, 현해탄을 건너 후쿠오카, 히로시마, 교토, 일본 본토의 최북단 아오모리를 가는 요코의 여정이며, 하나는 2010년, 한국의 중앙 충주를 출발하여 대전, 부산, 현해탄을 건너 후쿠오카, 나가사키, 일본의 최남단 섬 고토를 가는 야마시다 마사코의 여정이다. 두 개의 여정은 한 길을 가다 현해탄을 건너 후쿠오카에서 갈린다. 북으로 가는 요코의 여행은 히로시마, 교토, 도쿄 등 일본의 중심을 향하는 여행이며, 남으로 가는 야마시다 마사코의 여행은 변방 규슈를 통과하여 더 변방, 남단 섬으로 가는 원심적 여행이다. 두 일본 여인은 각자의 이유로, 반세기의 시차를 두고 한국에 살았고 모두 자신의 조국, 그리고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들을 따라가는 분열적인 한국인 화자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묻는다. 그러니까 총 세 개의 길이 있다.

DIRECTING INTENTION

만약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야마시다 마사코 씨가 슬픈 사람이었다면, 그녀와 같이 일본 여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밝은 모습 속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느끼는 슬픔을 역으로 치유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은 즐거움으로 가득 찼고, 허물없이 친해졌다. 그러나 국가라는 보이지 않는 거리는 항상 존재했다. 우리는 양국에서 너무 많이 다룬 문제, 내가 상대를 보는 것에서 벗어나, 상대를 통하여 나를 보는 문제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것이 과거를 무로 돌리는 우아한 말장난, 소위 ‘균형적 시각’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확실히 그녀에게 말했고 그녀도 받아들였던 말, “마사코 선생님, 제가 그렇다고 일본의 침략 행위를 절대 묵인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거기에 동조한 한국인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감싸는 사람도 아닙니다.”라는 그 말을 서로가 잊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녀를 존중했고, 그녀는 우리를 배려했다. 우리는 서로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고, 서로 자국의 친구로부터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보편적 고통, 슬픔, 우정에 대해서도 공감했지만, 결국 또 국가라는 괴물을 건너뛰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국가는 적대적이고, 서로 적대적이어야 국민을 통치하고, 그러면서도 자기들끼리는 내통하기 때문에, 조선과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일본과 해 온 짓을 보라, 야합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개인적인 친구를 만들지 않으면, 평화를 사랑하는 민간의 흐름을 서로 만들지 않으면, 다시 국가에 의해 서로가 죽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영화가 서양에 의한 시선,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 중심에 대한 거부를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의 모든 논리보다 중요한 것은 관찰자적 비평적 삶이 아니라, 개척이라는 삶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평은 자신의 고정된 시각으로 세상을 다 이해하려고 하지만 결국 그 자리에 있고, 개척은 시시각각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보석처럼 빛나는 친구를 만난다.

FESTIVAL & AWARDS

2012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상

DIRECTOR
김응수

김응수

1996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2002 <욕망>
2006 <달려라 장미>
2007 <천상고원>
2008 <과거는 낯선 나라다>
2010 <물의 기원>
STAFF

연출 김응수
제작 김응수
각본 김응수
촬영 박기웅
편집 김응수
음악 김원
출연 야마시다 마사코

PROGRAM NOTE

<아버지 없는 삶>은 일종의 시네 에세이이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인과 결혼해 충주에 살고 있는 야마시다 마사코라는 50세의 일본 여성이 20년 만에 고향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의 뼈대는 매우 느슨하게 전개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쉼 없이 들려오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1인칭 화자의 시점과, Q라는 인물이 B라는 또 다른 인물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을 오간다. 내레이션 속에서 마사코의 여행에 대한 화자의 단상은 일제 해방기 북한에서 일본으로 도피했던 한 일본 여성의 수기인 <요코 이야기>와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1949)과 교호한다. 픽션과 논픽션, 현실과 이야기 속의 세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아버지와의 특별한 관계 정도이다. 김응수 감독은 시공간을 비월하여 정신 혹은 육체적으로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여성 마사코를 축으로, 아버지를 두고 시집을 가는 <만춘>의 노리코가 품은 연민, 아버지의 부재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겪는 요코의 이야기를 대비시킨다.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혈연적 관계를 초월한 거대한 제도의 상징이며, 애증의 기호이다. 한국인과의 결혼을 반대하고 끝내 딸을 부정해 버린 아버지를 마사코는 단호히 떠났고, 그녀의 아들이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버지의 화해의 제스처는 마사코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마사코는 고향 고토를 20년 만에 방문하지만, 아버지와 조우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여정을 이어가고, 감독은 그녀에게서 감정적 흔들림을 포착하려 하지만 이는 매번 실패로 돌아간다. 가부장적 전통에 얽매여 있는 마사코의 아버지는 감독의 내레이션 속에서 정치적 상징 질서 속의 아버지 박정희로, 요코의 시선 아래 미화되었지만 기실 731부대원 출신으로 추정되는 요코의 아버지로 이어진다. <아버지 없는 삶>은 아버지에 얽매인 삶으로 대변되는 해묵은 가부장적 가치관에 대한 사색적인 비판이며,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획득해야 하는 ‘아버지 없는 삶’의 가치에 대해 역설한다.

장병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