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서울독립영화제2017 (제43회)

경쟁부문 장편

김중현 | 2017 | Fiction | Color | DCP | 111min 50sec (E) | 대상

SYNOPSIS

도둑강의를 들으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민경. 알바를 하는 만두가게에서 몰래 푼돈을 훔치고 진규에게 용돈인지 모를 돈을 받으며 생활하지만 아버지의 합의금도, 영치금도 게다가 보증금마저 다 까인 밀린 월세도 낼 수 없다. 무작정 집을 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없는 민경은 한때 룸메이트 였던 대학 친구 여진을 찾아간다. 우울증으로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던 여진의 행복한 모습이 어디인지 못마땅하다. 민경은 여진에게 함께 지내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안도하지만 그마저도 갑작스러운 은진의 방문으로 산산조각 난다. 여진을 피해 도망치던 민경은 차가운 웅덩이에 빠진다. 컨테이너에서 앓고 있는 민경은 진규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서 살게 된다. 진규의 아들 성훈은 민경이 엄마이길 바라며 다가오지만 민경은 밀어낸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성훈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렇게 그들과의 작은 행복을 꿈꿀 무렵, 진규의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민경은 성훈을 버리고 또다시 거리로 나간다.

DIRECTING INTENTION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물었다.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P의 집 아닌가요?’ 나는 아니라고 했다. ‘P의 집이 아니라고요?’ 나는 그렇다고 했다. 여자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혹시 언제 이사 오셨어요?’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칠년 됐거든요.’ 다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조금은 무서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 잠금 장치를 확인했다. 짧지만 긴 시간이 흘렀다. 여자가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 소리가 무거웠다.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공동 현관을 나오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짐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멘 여자가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가방을 고쳐 멨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봤다. 정말 모르겠다. 그녀는 어디로 가는 걸까? 지금도 가고 있을까?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 나의 바람은 위선일까?

FESTIVAL & AWARDS

2017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감독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EC)상

DIRECTOR
김중현

김중현

2010 <날 놓아줘>

2011 <가시>

 

 

STAFF

연출 김중현
제작 박은지
촬영 문명환
편집 박선주
조명 문명환
음악 카프카
녹음 온세웅
색보정 이혜민(CJ Powercast)
출연 조민경, 이주원, 김성령, 박시완, 박영빈

PROGRAM NOTE

그 어느 때보다도 영화 속 여자들의 고행기가 쏟아진 해였다. 대체로 이들은 십 대 중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며, 집 없이 떠돌고,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영화들은 이 여자들의 고된 길을 따라가며 그 과정에서 이들이 필사적으로 행하는 선택들을 극화한다. 그래서 종종 이들의 삶을 영화적으로 착취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월>은 어떤가. 그녀가 왜 이런 삶에 놓이게 되었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집을 갖지 못한 소녀가 안정된 터전 위에서 삶을 시작하기 위해 어떤 관계들 안으로 뛰어들며 어떤 선택들을 감내하는지를 차근차근 따라간다. 영화는 구구절절한 대사나 내면의 극적인 형상화가 아니라, 담담하고 담대하며 때로는 섬뜩한 표정과 집요한 행로로 앞만을 보고 나아가는 여자를 통해 그 과정을 짚어나간다. 여자의 상황에 대한 섣부른 감정적 동일시를 차단하고 보는 이들에게 위안을 줄 만한 여지들을 남겨주지도 않는다. 다소 작위적이거나 상투적일 수 있는 순간들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넘어간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도 진전되지 않았다는 자각 속에서 이 여자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전에, 그녀의 현재를 무력하고 뼈아프게 묻게 될 것이다.

남다은 / 서울독립영화제2017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