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서울독립영화제2020 (제46회)

단편 쇼케이스

김현민 | 2020 | Fiction | Color | DCP | 14min 25sec (E)

SYNOPSIS

떡볶이를 자주 먹는 여자가 있다. 출출하면 무조건 떡볶이부터 찾는다. 점심 먹기 전에도, 퇴근 후에도 자기도 모르게 떡볶이를 먹고 있다. 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DIRECTING INTENTION

우리는 과거로부터 완전히 달아나지 못한다. 그것은 희미한 얼룩처럼 남아 우리의 현재를 구성한다. 사소한 기억은 불쑥 우리를 덮치기도 하지만, 좀체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저 동요하게 만들 뿐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떡볶이 얼룩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FESTIVAL & AWARDS

World Premiere

DIRECTOR
김현민

김현민

 

STAFF

연출 김현민
프로듀서 연제광
각본 김현민
촬영 한상길
편집 김현민, 박지희
조명 김태양
사운드 김주현
음악 조충만
D.I 한상길
조연출 박지희
출연 강진아, 박서경, 김사랑

PROGRAM NOTE

살다 보면 예기치 않게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을 헤집는 파란(波瀾)의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혜진에게는 길모퉁이에 위치한 분식집의 떡볶이가 그렇다. 이 집에서 떡볶이를 먹은 건 초등학교 시절부터다. 당시의 혜진은 이곳을 지나다 친구 지원이 불러 함께 떡볶이를 먹었다. 지원의 호의가 고마워 이번에는 혜진이 사려 했지만, 돈이 부족해 그러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혜진이는 지원이를 피해 다녔다. 도망치듯 하는 혜진을 바라보는 지원의 표정이란. 어른이 된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혜진은 마음이 쓰리다. 옷을 빨아도 희미하게 자국이 남는 떡볶이 국물의 흔적처럼 분식집을 지날 때면 그날이 생각나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몰랐지만, 어른이 되면 알게 되는 복잡한 심경의 결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간단한 식사 주문도 내 의견을 앞세우기 전 동료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지금의 혜진이었다면 지원의 속을 살펴 상처받게 하지 않았을 텐데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죄책감이 가시지 않는다. 이제 와 후회해도 소용없는 기억은 냄새가 심해 잘 먹지 못하는 홍어(극 중 혜진이 연제광 감독의 <홍어>를 보는 장면이 등장한다!)처럼 피하고 싶어도 삼켜야 한다. 그래서 혜진이 입에 넣는 떡볶이는 단순히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애잔함을 씹어 삼켜야 하는 일종의 소화제다. 길모퉁이를 돌아 과거와 등을 져 걷는 혜진의 뒷모습에서 어른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허남웅 / 서울독립영화제2020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