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함

서울독립영화제2011 (제37회)

본선경쟁(단편)

신희주 | 2011|Experiment|Color|HD|12min

SYNOPSIS

어두운 밤, 빛의 향연, 도시에서 붉은 꽃들이 춤을 춘다.

DIRECTING INTENTION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772 천안이 침몰되었다.’ 해군 병사 46명이 사망하고 명확한 사고 경위가 밝혀지지 않은 본 사건보다 사건 이후에 ‘대한민국 민주 공화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행위들이 흥미로웠다. 그 모든 행위들은 크레인에 매달려 인양되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조차 허구라고 느끼게 할 정도로, 천안함 침몰을 명백히 관념적인 사건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실체 없는 이데올로기의 향연, 마치 유령의 춤처럼 보이게 되었다. 21세기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여기 이곳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무덤이며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 그 풍경에 조소를 바치고 싶었다.

DIRECTOR
신희주

신희주

STAFF

연출 신희주
촬영 신희주
편집 신희주, 박세영
조명 신희주, 김인선
출연 이슬기, 박예림, 박미란, 신혜리, 안지영, 이송이, 지혜경

PROGRAM NOTE

한 사건에 대해 소위 공인된 사실과 떠도는 풍문 중, 옥석을 가리기에 앞서, 주장의 발화 위치를 가늠해 보면, 그것들은 때때로 정교하게 계층이나 혹은 계급을 대변함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사건은 정치적 입장의 허울을 쓰고 치열하게 재구성 되곤 한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남북문제가 그러하다. <폐함>은 2010년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신의 구성은 단순하다. 해군함대의 침몰 당시의 기록과 부채춤 장면이 그것. 전자는 팩트에 기반 한 것이고, 후자는 일반적으로 수용되어 왔던 북한의 이미지에 대한 재현이다. 영화는 두 장면을 교차 편집하여, 사건과 그를 둘러싼 상징이 결합해 왔던 방식을 반문한다. 거칠게 왜곡되고 편집된 비디오와 때때로 괴기스러운 사운드의 무질서는 공인되고자 했던 진실을 소외시키고, 머리에 꽃을 달고 부채춤을 추는 여인들은 자본주의 남한이 대상화했던 ‘북한’에 대한 진부한 이미지를 새삼스레 환기시킨다. 시계방향으로 돌았다는 폐함에 대한 진술은, 부채춤의 시계방향과 자연스럽게 일치하지만, 효력을 잃은 낡은 이데올로기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냉소 속에 표류한다. 한차례 사운드 덩어리의 아우성과 함께 긴 암전이 지나면, 영화의 1/4지점부터 카메라는 전경으로 부채춤의 여인들을 소리 없이 응시한다. 멀리 떨어져 옥상 위 부채춤 장면을 한참 들여다보다 보면, 한편으로 묘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도시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천천히 춤을 추는 여인들의 이미지는 폐함과 함께 침몰했건만, 자본주의 도시의 밤은 여전히 깊고 푸르다는 것. 차갑고 견고하게 비웃듯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2011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