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대오의 죽은 원혼들

본선 단편경쟁

안지환 | 2022 | Experimental | Color+B/W | DCP | 20min 27sec (K) World Premiere

SYNOPSIS

해안도시 출신의 화자는, 어렸을 적 자신이 살던 고향 도시에서 있었던 대규모 집회 행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극렬했던 시가지 데모와, 거기서 봤던 개 한마리, 상여, 불, 물대포, 죽창 같은 것들.
행진대오에서 흰 개를 본 화자는 개의 사진을 찍었다.
행진이 끝나고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했지만, 사진에는 개가 없었다.

DIRECTING INTENTION

작업으로 완성시키지 못한채 꿈속에서 맴도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야기를 건네준, 싸우고 있는 이들과 싸우다 먼저 간 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어줍잖은 헌사를 쓴다,

FESTIVAL & AWARDS

World Premiere

DIRECTOR
안지환

안지환

2014 분신

STAFF

연출 안지환
공동프로듀서 정여름
촬영 안병우
편집 손희영
출연 양기남, 곽희성

PROGRAM NOTE

가로등 불빛이 스며드는 어두컴컴한 방에 밤늦도록 앉아 술이라도 한잔 기울이며 들려주는 듯한 누군가의 목소리는 경상도, 그것도 부산 사투리의 젊은 친구인 것 같다. 젊다고 하지만 그도 이제 서른 초반을 넘겨 근 20년 전 행진대오를 따라갔던 그날들을 회상한다. 그때의 청년은 “고등학교 자퇴하고 딴따라 한다고 깔짝대던”, 그래서 “학생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데, 울산의 한 하청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전라도 사투리의 노동자가 “학생 동지, 학생 동지”라 부르는 것조차 부끄러웠던 사람. 사무실 벽을 채우고 있는 영정 사진을 살펴보며 시골집에 걸려 있는 조상들 사진을 떠올리는 그는 죽은 이들을 떠나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죽은, 그래서 맨 오른쪽에 위치한 영정 사진의 인물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한다. 체 게바라와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좋아했다는 노조 위원장이 키웠던 개, 하얀 개의 이미지는 그를 계속 따라다닌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은 “A dog and spirits in the rally”인데, 개는 맥거핀처럼 작용하는 듯하다. 끝없는 행진 물결 속에 난데없이 등장한 개는 불타는 꽃상여 앞까지 와서 짖어 댄다. 행진대오에 있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하나둘 불길 속으로 빨려 들어가 타올라 가고, 개 또한 그 불 속으로 스윽 사라지고, 이것을 35mm 필름 카메라로 찍던 화자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물론 카메라는 부서지고, 개를 찍은 필름은 타 버리고……. 영화의 시작과 끝에 인용되는 알베르 카뮈의 텍스트 「가장 가까운 바다—항해일지」(『여름』)는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파도—수많은 물방울들의 집합(행진대오)과 모래알들 위에 쓰이며 죽었지만 죽지 않고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일깨운다.

이수정 / 서울독립영화제2022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