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12 경쟁부문 심사평

서울독립영화제2012 경쟁부문 심사평

올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선에 오른 작품들은 단편 39편, 장편 10편(다큐 7편, 극 3편)입니다. 최근 한국사회를 반영하는 이슈들을 다룬 작품들부터 영화 만들기나 연애에 대한 고민을 투영하는 자기 반영적인 작품들까지 소재적인 측면이나, 만듦새의 측면에서 비교적 고른 수준이었습니다. 해가 바뀔수록 감독들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도발적이고 용감하게 창의적인 길을 개척하는 특별한 기량의 작품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상업영화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영화가 아니라, 그 무엇에도 눈길을 흘리지 않고 온전히 자기만의 눈으로 유일무이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영화를 기다립니다.

올해는 단연, 장편 다큐멘터리들이 강세였습니다. 오랜 시간, 끈질기게 대상과 함께 살며, 세상, 그리고 카메라를 든 자신과 싸우는 이 영화들은 소재를 발굴하는 힘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들의 완고함과 치열함을 극영화에서도 마주하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

심사위원단이 선정한 서울독립영화제2012 대상작은 이정홍 감독의 <해운대소녀>입니다. 4분 55초의 단편영화가 대상을 수상하는 일은 실로 오랜만일 것입니다. 심사위원들은 후보작들을 견주면서 장편과 단편, 극영화와 다큐를 같은 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을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한 편의 완성된 영화는 그 길이나 장르에 상관없이 모두 동등하게, 영화 그 자체로서만 평가받아야 한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재를 짧은 시간, 예상치 못한 단 몇 개의 숏으로 강렬하게 전달하는 <해운대소녀>는 우리들이 본 영화들 중 단연 창의적이고 그 어떤 틈도 없이 단단했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소재도, 그 소재에 대한 이야기의 구구절절한 나열도, 스타일에 대한 과욕도 아니라, 소재에 필연적인 형식을 발견해 내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해운대소녀>가 보여 준 이정홍 감독의 독창적인 영화적 감각의 가능성에 확신으로 내기를 걸고 싶습니다.

최우수상에 선정된 작품은 홍재희 감독의 <아버지의 이메일>입니다. 아버지의 불행한 개인사, 감독의 상처투성이인 가족사, 한국의 굴곡 많은 근현대사가 맞물리며 자아내는 이 영화의 감동은 그 누구라도 부정하기 힘든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보편적인 감동의 힘은 감독과 그녀의 가족들이 용감하게 자신의 사적인 기억을 대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메일>은 한 편의 훌륭한 이야기이며, 어떤 식으로든 우리들 개개인의 심장을 건드리는 아픔이며, 무엇보다 그 아픔을 들여다보게 하는 치유의 영화입니다.

우수상 수상작 두 편은 강석필 감독의 <춤추는 숲>과 김민지 감독의 <학교 가는 길>입니다. 성미산마을 주민인 감독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싸우며 찍은 <춤추는 숲>은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눈물겹고 간절한 실패의 기록이지만, 그 실패의 기록은 체념과 냉소가 결코 아니며, 그 어떤 성공의 기록보다 건강한 삶의 기운을 우리에게 안겨 줍니다. 한국 어느 변두리의 초라한 마을에 사는 어느 몽골 가족들의 이야기인 <학교 가는 길>은 감독의 개입이나 감정이입의 계기를 마련해 두는 장면들이 없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가족의 일상적 순간들에서 예상치 못한 시적인 울림을 건져 올립니다. 그런 태도가 이 가족들의 삶을 타자화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엄하게 보여 준다는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특별언급은 최승철 감독의 <깊이에의 강요>와 최아름 감독의 <영아>입니다. <깊이에의 강요>는 올해 경쟁작들 중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실험적인 태도가 돋보이며, <영아>는 영화적 감각이 섬세하고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올해 독립스타상의 배우부문은 김창환에게 돌아갔습니다. 올해 여러 편의 경쟁작들(<밤>, <지각생들>, <1999, 면회>)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준 김창환은 앞으로의 변신과 다양한 활동이 더 기대되는 배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스탭부문은 <충심, 소소>의 박경석 촬영감독에게 돌아갔습니다. 박경석 촬영감독은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 사이의 그 멀고도 가까운 심리적 거리를 휘황찬란하지만 위태로운 도시의 공기와 낡은 아파트의 구석진 공간들을 통해 예리하게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감독들의 최선이 느껴지는 영화들을 최선을 다해 보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보다 더 많은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영화들이 준 감동과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린 서울독립영화제2012는 여러분의 영화들 덕분에 춥지 않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소중한 영화들을 기꺼이 출품해 주신 모든 감독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12 경쟁부문 심사위원 일동

장률 (영화감독)
신동일 (영화감독)
김우형 (촬영감독)
강혜정 (영화사 외유내강 대표)
남다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