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13 경쟁부문 심사평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장편영화 9편과 단편영화 45편을 보았습니다. 모두 다 소중하고 뛰어난 작품들이었습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그 속에서 고심 끝에 수상작들을 정하였습니다. 

대상은 김이창 감독의 <수련>입니다. 한 남자가 마치 고행자나 되는 것처럼 역기를 들고 몸을 ‘수련’하는 첫 장면에서 이미 이 영화의 힘을 느꼈습니다. 단단하고 강력한 장면들이 연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영화는 수련의 과정과 더불어 외롭고 가난한 남자의 일상까지 묵묵히 담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그 남자가 꿈꾸고 시도하는 사물과의 교감 그리고 어머니에의 그리움이 하나둘 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화면 속의 남자는 늘 혼자였습니다. 그의 외로움은 극단의 형식으로 잘 표현되었고 그 형식은 타당하거나 필연적으로 보였으며 그 형식으로 인해 단조롭기는커녕 감흥에 가득 찬 다큐-극영화 한 편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별똥별 같은 이 영화의 범주를 어떻게 새로이 말해야 하는가 하는 즐거운 고민에 빠지는 동시에 이 영화가 선사해 준 감각과 감정의 그 크나큰 호소력에 가장 큰 상으로 화답해도 된다고 마침내 판단하였습니다. 

최우수작품상은 신이수, 최아름 감독의 <이름들>입니다. 어느 젊은 시인의 조금 바쁘고 번잡한 하루를 그려 내는 영화입니다. 그간의 독립영화들에서 많이 보아 온 소재입니다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을 묘사해 내는 그 섬세함이 참으로 탁월하였습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시 한 편을 읽은 것 같은 감흥을 안겨 주었습니다. 

우수작품상은 구자환 감독의 <레드 툼>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벌어졌던 일로, ‘보도연맹 사건’이라 하여 셀 수도 없이 많은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대참극이 있었습니다. 희생자의 가족이라면 혹은 목격자라면 모두가 이 뼈아픈 과거를 기억하기 두려워하고 말하기 꺼려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레드 툼>은 보도연맹에 관한 수없이 많은 증언들을 끌어내고 들려줍니다. 다큐멘터리가 해야 할 어떤 기록의 의무를 이 영화는 훌륭하고 감동적으로 완수하고 있었습니다. 

심사위원상은 장편과 단편 한 작품씩 나누어 수상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박문칠 감독의 <마이 플레이스>, 곽민승 감독의 <밝은미래>입니다. <마이 플레이스>는 스스로 비혼모가 되기를 자청한 여동생을 중심으로, 감독 자신이 그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씩 관찰하고 소통하는 영화입니다. 그 안에 배어 있는 쾌활함과 소소한 성찰들이 돋보였습니다. <밝은미래>는 젊고 유능하지만 가난하기도 한 우리 시대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었습니다. 오보에 연주자인 주인공이 아끼는 악기를 팔아야 하는 그 순간 저희들의 가슴도 실로 먹먹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스타상은 <셔틀콕>의 배우 이주승, 열혈스태프상은 <한공주>의 촬영감독 홍재식입니다. 젊고 유능한 배우 이주승은 <셔틀콕>에서 유랑과 상실의 감정을 한 몸에 담아 보여 주는 열연을 펼쳤습니다. 그의 무한한 미래에 기대를 걸기 충분했습니다. <한공주>의 홍재식 촬영감독은 기술력과 표현력 어느 면으로 보나 최상급이었으며 이 영화의 혁혁한 일등 공신 중 한 명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모든 작품들을 다 수상할 순 없었습니다. 수상작 외에 나머지 경쟁작들이 지닌 치열함과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선별해 내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저희들의 한계이며 무능이며 불찰입니다. 그래도, 다시 말하지만 모두가 소중하고 뛰어난 작품들이었습니다. 2013년 경쟁부문에 작품을 출품하신 모든 창작자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뿐입니다.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 일동 
김소영(영화감독, 영화평론가)
박기용(영화감독)
성기완(뮤지션, 시인)
정한석(기자)
태준식(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