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15 경쟁부문 단편 예심 심사평

2015년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 단편은 총 880편, 극영화 651편, 애니메이션 111편, 다큐 62편, 실험 52편, 기타 4편이 출품되었습니다. 출품된 단편영화들은 상대적으로 고비용을 들여 제작한 단편 블록버스터급 영화에서부터 거의 1인 제작에 가까울 정도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초저예산 영화까지 실로 다양했습니다. 그중에는 TV 예능에서 빌려온 편집 형식에 아이디어를 접목하거나 CCTV나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차용한 영화도 많았습니다. 물론 홈 비디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작품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작품들이 이야기와 상상력을 능숙하게 풀어냈고 완성도 또한 높았습니다. 특히 여타 어느 장르보다도 애니메이션 작품들의 경우 색다른 시선과 창의적인 발상, 우열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고른 작품 수준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합니다.

예심 논의를 거쳐 최종 선택한 작품은 극영화 25편, 애니메이션 6편, 실험 영화 3편, 그리고 실험 형식을 차용한 다큐멘터리를 포함, 다큐멘터리 3편으로 총 37편입니다. 선정된 작품들은 극영화에서부터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만듦새는 서로 달라도 주제와 소재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과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장르를 불문하고 선정된 영화들 다수가 가장 예민하게 촉각을 세운 주제는 우리가 사는 지금 한국 사회의 현주소, 바로 동시대의 무게였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범람이 몰고 온 사회 경제적 문제 – 경제 불황으로 인한 가족 해체, 한부모 가정, 노동 소외, 복지의 사각지대, 도시 재개발, 이주로 인한 공동체 파괴 등이 이미 우리 주변에 아주 일상화된 풍경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 다수였습니다. 특히 20 대 80의 사회 또는 승자 독식 사회 일명 ‘갑질하는 사회’라고 명명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팍팍하고 고단한 오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자본주의 극단적 무한 경쟁에 내몰려 스스로를 오포 세대라 규정하는 청년 세대의 삶에 대한 자기 반영적 서사나 불안정한 노동 현실 아래서 취업 유학 실업 사랑 등 선택의 갈래에 놓인 20대의 불안하고 막연한 심리를 투영한 영화를 통해 우리는 불안정한 노동 현실이라는 이 시대의 공기를 뚜렷이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탈북 가정과 이주민 그리고 성적 소수자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주변인, 소수자에 대한 꾸준한 관심 또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올해는 군대 폭력을 비롯한 가정 폭력 등 일상 속에서 폭력을 묘사하는 작품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가족 해체와 학교 폭력을 다룬 영화가 두드러졌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에 일상화된 폭력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일상화된 폭력을 말 그대로 ‘일상적’으로 재현하는 데 그친 작품이 다수였으며 폭력에 대한 자신만의 단단한 시선이 녹아있는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 ‘영화 속 영화’, ‘영화에 대한 영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가 많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영화 제작의 저변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 창작자 스스로 영화를 만드는 것 즉 영화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사유와 자기반성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자못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다만 대다수 작품이 깊이 있는 성찰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단지 목적 없는 자기 독백이나 자의식 과잉에 머무른 점은 못내 아쉽습니다. 더 날카롭고 새로운 시선이 더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으로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작품들은 ‘옳은’ 선택이라기보다 ‘다른’ 선택이라는 것을 밝혀둡니다. 각자 다른 이유와 의미로 선택된 작품들입니다. 선정이라는 측면은 객관적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가장 주관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작품을 논하는 시간은 만장일치를 보려는 장이 아니라 이견이 상충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수렴하려는 노력이자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는 문화가 구축되는 중요한 순간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야기’라고 믿습니다. 이야기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독립영화는 바로 그 ‘이야기’를 치열하게 추구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이처럼 각기 다른 색깔, 다른 개성, 다른 시선을 지닌 37편의 다양한 ‘이야기’를, ‘사이다’처럼 싸하고 쿨한 독립 영화, ‘독립사이다’를 마음껏 맛보고 즐기기를 바랍니다.

단편예심위원(가나다 순)
박배일 (영화감독, <잔인한 계절>, <밀양전>, <밀양아리랑>)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전종혁 (영화평론가)
진명현 (MOVement 대표)
허남웅 (영화평론가)
홍재희 (영화감독, <암사자(들)>, <아버지의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