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17 본선부문 심사평

 

올해 서울독립영화제 기간 동안 우리는 스크린 위에서 여러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흐릿하게만 포착되는 세상 속에서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얼굴이기도, 저 홀로 틀진 듯 무심하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배회하는 무표정한 얼굴이기도 했습니다. 의미심장하게도 이 얼굴 대부분은 여성들의 얼굴이었습니다. 올해 경쟁부문의 독립영화는 무엇보다 이러한 얼굴들을 바라보는데 몰두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힘에 의해 터지고, 일그러지고, 움츠러들고, 딱딱해지고, 흐트러지는 여러 얼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힘이라는 것이 지금 여기의 한국이라는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한 힘인지, 아니면 그 상황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연출자들이 영화에 투입한 가공적인 힘인지는 불분명했습니다. 
올해 저희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대상 수상작은 김중현 감독의 <이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늠하기 어려운 힘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강건함을 잃지 않으며, 동정을 바라지도 않지만 기왕 베풀어진 동정에 감사하지도 않으며, 우리에게 쉬이 그의 이면 혹은 내면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섣불리 연출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미약한 것이더라도 어떤 삶의 얼굴을 지닌 이의 위엄을 존중하는 성숙한 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데뷔작 <가시> 이후 오랜 만에 새로운 장편을 완성한 김중현 감독의 귀환을 축하합니다. 최근의 독립영화에 두드러진 형식적이고 기술적인 과시나 감정적 탐닉 없이 삶과 영화의 가능한 관계에 대해 신중하게 숙고하는 <이월>의 미덕이 이후의 작품에서도 보다 넓고 깊게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최우수 장편상 수상작은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입니다. 여기엔 아들의 희생 덕택에 익사 직전에 구조된 아이, 그런 까닭에 마주하기 꺼림칙할 수밖에 없는 아이와 더불어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를 두고 고민하는 부부가 등장합니다. 능숙한 장면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다만 후반부의 반전이 영화가 제기하고 있는 물음이 심화된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회피이거나 예정된 결말로 향하기 위한 무리한 굴절처럼 여겨진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음을 밝혀 둡니다. 최우수 단편상 수상작은 이수아 감독의 <손의 무게>입니다. 부분적으로 장르영화적 요소를 차용하면서 데이트 폭력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심사위원상 수상작은 이강현 감독의 <얼굴들>과 오서로 감독의 <(OO)>입니다. 올해 경쟁부문의 독립영화들 상당수가 어떤 힘에 반응하는 얼굴들을 바라보는 일에 몰두하고 있음은 앞서 밝힌 바와 같습니다. 대담하게 실험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는 영화인 <얼굴들>에서, 이강현 감독은 그 어떤 힘의 근원이라 할 동시대의 풍경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이 풍경들 속에서 가능한 얼굴들은 어떤 형상인지를 묻습니다. 그런데 이 얼굴들은 다른 얼굴들과 의미 있게 대면하기 직전의 얼굴들이며, 이 영화 또한 어떤 가능한 영화를 위한 영화 이전의 영화입니다. 크고 작은 재채기로 인해 온갖 방식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이 마침내 평온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더할 나위 없이 리드미컬하게 그려낸 오서로 감독의 애니메이션 <(OO)>는 내년 서울독립영화제의 스크린에서는 병증에서 회복된 힘 있는 얼굴들을 만나게 되리라는 활기찬 다짐이자 약속처럼 여겨졌습니다. 
독립스타상은 <한낮의 우리>의 문혜인과 <죄 많은 소녀>의 전여빈 두 여배우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무엇보다 두 분의 연기로 기억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 많은 영화들에서 두 분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혈스태프상은 <사냥의 밤>의 음악과 사운드디자인을 맡은 신성아 작곡가에게 드립니다. 신성아 작곡가의 사운드는 빛과 어둠의 조율을 실험하고 있는 이 영화에 촉각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감각을 더했습니다. 
올해 아쉬웠던 점 가운데 하나는 다큐멘터리 작품들 가운데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탄핵정국의 한복판에서 치러졌던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이후 일 년 간 사회적으로 여러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기에 이러한 변화의 의미를 기민하게 탐지해내는 여러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은 더 컸습니다. 내년에는 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다큐멘터리들이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기를 바랍니다. 
올해 수상하신 모든 감독과 배우와 스태프 분들께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영화를 출품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울독립영화제 2017 본선 심사위원 일동
변영주 (영화감독)
유운성 (영화평론가)
이선영 (촬영감독)
이혁상 (영화감독)
정병길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