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19 본선경쟁 부문 심사평

 

2019년 서울독립영화제는 자본의 절대적 힘 아래 영화관객의 취향까지 획일화, 표준화의 길로 길들이는 영화산업의 현재에 대해 ‘일시 멈춤’이라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이에 엔터를 눌러보기도, 백스페이스를 눌러보기도 하면서 충격 혹은 반성으로 영화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로 경쟁부문이 채워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채워진 33편의 장편, 단편,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실험영화에는 어떤 흐름이 포착되었습니다. 관행적 영화만들기, 관습적 스타일, 유머감각을 상실한 정치적 올바름, 어색한 봉합과 화해 등을 거스르는 변화의 추진력이 있었습니다. 정해진 대로의 영화만들기에 저항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평균적 시선을 뛰어넘는 ‘다양성’과 ‘새로움’, 그리고 ‘대항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변화의 시작, 변화의 추진력, 변화의 흐름을 일구어가는 독립영화의 힘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주류적 스타일, 시각, 주제의식에 반하는 방식은 낯섦을 넘어 때론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난해함으로 다가왔지만 이 자체가 영화의 본질에 대해 재고하는 훌륭한 재현 전략이라고 봤습니다. 세대 간 대화, 약자의 목소리, 경계 넘기, 영화제작의 자의식을 다루고 있는 다양한 양식의 영화들에서 현재에 대한 ‘어떤 질문’, 삶에 대한 ‘어떤 질문’, 영화의 본질에 대한 ‘어떤 질문’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감한 시도 자체가 바로 ‘시프트-변화’를 이끌어내는 동력입니다.  
올해의 대상은 김현정 감독의 <입문반>입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주인공은 교과서로 익힌 삶이 현실의 삶과 충돌을 일으키자 혼란을 수습하려 애쓰면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가는 힘겨운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그녀의 감정적 혼란에 뜨겁게 반응하지 않으며 관조하면서 그녀를 둘러싼 세상을 보여줍니다. 지역 문제, 성 문제를 포괄하며 누가 진짜 약자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진지한 문제작입니다. 모멸감과 수치심에 대면할 때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불안한 처지의 삶에 손을 건네는 성숙한 자세에서 영화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연출력에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균열을 목격하고 감정의 파고를 겪는 가운데 상황을 수습하려는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하는 디테일한 연기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 요소입니다. 기술적인 과시나 감정적 폭발 없이 신중하고 진지하게 삶을 바라보는 이 영화의 태도는 현란한 영화들 속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전파할 것입니다. 
최우수장편상은 김성민 감독의 다큐멘터리 <증발>입니다. 2000년에 사라진 아이를 지금까지 찾아 헤매는 아버지와 그의 가족을 관찰하는 작품입니다. 어느 날 아무런 단서도 없이 증발되어 버린 아이, 눈물조차 말라버린 채 삶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아이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 서서히 붕괴되어버린 가족 공동체, 이제는 다른 삶을 영위해나가야 할 가족 구성원들. 이 모든 것이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영화는 설명하거나 주입하지 않으며 섣불리 위로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바라볼 뿐이며 스스로 일어나서 이 모든 것에 희망의 빛이 비추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구경하는 카메라가 아니라 고통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거리가 놀라움을 전하는 다이렉트 시네마의 성취입니다. 
최우수단편상은 배꽃나래 감독의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입니다. 한글을 배워가는 할머니와 그 친구들과 명랑하게 대화하던 다큐멘터리는 어느새 할머니들의 몸에 새겨진 한 점에 주목합니다. 그를 통해 몰랐던 과거를 밝혀내고 여성들의 구술로 새로운 역사쓰기를 수행합니다. 일제강점기를 경유한 이들 삶의 과거와 현재가 카메라 속 경쾌한 대화로 만납니다. 삶 속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감독의 카메라를 든 자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존경과 연대의식으로 가득한 영화이며, 마지막 크레딧까지 하나하나 고심한 감독의 세심한 시선은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모범으로 자리합니다.   
심사위원특별상은 강유가람 감독의 <우리는 매일매일>입니다. 이 작품은 마흔에 접어든 ‘영페미니스트’들의 현재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최근 불현듯 페미니즘 운동이 전파된 것이 아니라 20여 년 전 성차별로 가득한 세상에 불의를 깨우치고 온몸으로 행동하며 연대한 이들이 있었음을 알립니다. 이들이 일상에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감독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그때 그 동지들을 찾아 나섭니다. 페미니즘을 과거의 추억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좌표로 삼으며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들 각자 여러 삶의 방식은 성차별적 위계가 여전히 살아있는 사회를 다시 바라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삶의 지침을 전파할 강유가람 감독의 역작에 박수를 보냅니다.   
올해의 독립스타상은 <입문반>의 한혜지 배우와 <야구소녀>의 이주영 배우에게 드립니다. 한혜지 배우는 감정적 파고를 요란스럽게 표출하지 않으면서 내면으로 꾹꾹 눌러 담는 뛰어난 심리적 재연으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훌륭히 소화합니다. 작고 단단한 몸속에 응축된 거대한 에너지가 오히려 신선한 자극을 선사합니다. 이주영 배우는 영화 전체를 끌어가는 캐릭터를 맡아 영화적 활력을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주연배우의 활약에 영화의 명운이 담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강약 조절의 유능함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팬을 끌어당기는 스타성 있는 배우라는 생각을 잊게 하는, 한명의 젊은 연기파 배우의 등장이 몹시도 반갑습니다.  
열혈스태프상은 <창진이 마음>의 조영천 촬영감독에게 드립니다. 어른과 아이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과 긴장관계를 빛과 앵글 변화를 통해 표현한 촬영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현실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함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시도에 찬사를 보냅니다.
올해 수상하신 모든 감독과 배우와 스태프 분들께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영화를 출품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19 본선경쟁 심사위원 일동
문소리(배우, 영화감독)
박정훈(촬영감독)
신연식(영화감독)
윤가은(영화감독)
정민아(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