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19 본선경쟁 부문 장편 예심 심사평


 

 

서울독립영화제2019에 출품된 장편영화의 수는 120편입니다. 극영화가 70편 이상이었고 다큐멘터리가 나머지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과거에 비해 작품들 사이의 질적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은 지난 몇 년간의 심사과정에서 느껴온 반가운 현상입니다. 4명의 예심위원들은 이러한 최근의 경향을 곱씹으며 세상을 그저 읽어내는 작품들보다 그 세상을 영화 안에서 적극적으로 재조직하고 새롭게 감각해보려는 작품들에 주목했습니다. 그 결과, 총 11편의 영화들이 본선경쟁 부문 상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에듀케이션>은 모든 장면이 기이한 영화입니다. 상투로 빠질 법한 이야기를 붙들고 무엇도 설명하려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장면을 지탱하는 감정의 결이 여느 영화들과 확연히 ‘다르게’ 구축된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섬세함과 강렬함이 동시에 작동하는 드문 경험을 선사합니다. <여름날>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극적으로 동요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잔잔함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영화가 시간을 살아내는 태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바람의 언덕>은 집 밖으로 내몰린 소녀들의 삶에 천착해온 감독의 세계가 보다 성숙해진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중년의 배우들이 빚어낸 몇몇 장면들은 깊은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야구소녀>는 ‘프로팀에 입단하길 꿈꾸는 십 대 후반의 여자 야구선수’라는 특수한 상황을 소재로 삼지만, 과한 감동의 드라마나 반전의 계기에 기대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행보처럼 성실하고 침착하고 단단하게 자기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영화입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제목과 정반대의 현실에 처한 중년 여성의 나날에서 시작하지만, 일상을 이루는 유머와 온기와 환상과 소망을 놓지 않음으로써 제목의 마음에 도달합니다. 암담하고 우울한데 웃기고 사랑스럽습니다. <모아쓴일기>는 정체불명의 영화입니다. 다큐와 극의 형식을 뒤섞으며 고정된 길을 정해두지 않은 채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듯 거침없는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세계를 확장합니다.
<나의 정원>은 예술가를 다루는 기존의 다큐멘터리들처럼 작가의 삶이나 내면에 포커스를 맞추는 방식을 취하지 않습니다. 대신 거리를 두고서 작가와 작품의 이면이 아닌 표면만을 끈질기게 응시합니다. 그 응시가 이 영화를 또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으로 만듭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감독들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군기지에서 살아온 노년의 기지촌 여성을 찍은 영화입니다. 다큐와 극의 기법을 혼용하며 전작들보다 과감해진 형식을 경유해서 공적 역사와 개인사, 환상과 현실,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도전적이고 논쟁적인 방식으로 엮어냅니다. <해협>은 대만, 일본, 중국, 한국을 오가며 동아시아를 지배해온 전쟁의 기억을 불러냅니다. 카메라가 전쟁의 기억을 찍는다는 인상은 어느새 ‘해협’을 부유하는 원혼들이 카메라를 따라다닌다는 인상으로 변하며 이 영화만의 독특한 정념을 쌓아 올립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은 90년대 후반 대학가에서 열정적으로 싸워왔던 페미니스트들의 현재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다양한 장소에서 여전히 활기를 잃지 않은 그들의 현재도 반갑지만, 최근 한국 페미니즘이 이룬 성취가 그들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증발>은 17년 전 실종된 딸을 여전히 찾아 헤매는 아버지의 행로만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침묵 속에서 견디며 살아야 했던 어느 가족의 복잡한 내적 풍경에 대한 기록으로서도 의미를 지닙니다.
언제나 그렇듯 작품들을 선정하고 나면, 심사의 과정에서 아쉽게 제외된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예심위원들은 출품된 많은 영화들에서도 여러 가능성들을 보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독님들과 또 다른 영화들로 다시 만날 기회를 기다리겠습니다. 출품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본선경쟁 부문 장편 예심위원(가나다순)
남다은(영화평론가)
박인호(영화평론가)
이용철(영화평론가)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2019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