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0 본선 단편경쟁 부문 예심 심사평


 

 

2020년 서울독립영화제에는 역대 최다인 1,290편의 단편 작품이 출품되었습니다. 988편의 극영화와 85편의 다큐멘터리, 154편의 애니메이션과 57편의 실험영화 등 수많은 작품이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의 슬로건처럼 ‘어제와 다른 세계’를 몸소 살아가며 그 세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들은 나 자신을 깊이 파고드는 동시에 바깥으로 무한히 확장되어 나가는 질문을 던지며,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특별한 시선과 다양하고 흥미로운 말하기 방식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섯 명의 예심위원들은 출품된 영화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긴 논의를 거쳐 총 26편(극 15편, 애니 4편, 다큐 6편, 실험 1편)의 영화를 단편경쟁 상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많은 이들의 시간과 노력이 담긴 귀중한 성과를 관객들과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쁘고, 더 많은 작품을 포함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기본적으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와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품들 앞에서 의견을 모으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소재의 다양성과 그것을 다루는 진지한 고민, 관습을 벗어나는 참신한 시각, 영화를 끌고 나가려는 힘을 두루 고려하고자 했습니다. 
극영화 부문에서는 시대의 풍경과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주의 깊게 포착하면서 공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고, 또래나 가족 등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숙고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가 처한 각각의 조건을 다루거나, 하나의 영화 안에 서로 다른 세대 간의 갈등과 소통을 담아내는 경향도 눈에 띄었습니다. 여성의 삶과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 또한 돋보였는데, 다채로운 주제와 화법을 통해 복잡다단한 문제의식을 폭넓게 그려 내는 영화들이었습니다. 가정이나 일터 등의 공간에서 여성을 밀려나게 하는 힘의 논리를 날카롭게 직시하는 시선과 함께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 또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영화 보기와 영화 만들기를 소재로 삼은 작품, 다양하고 진중한 장르적 시도를 한 작품들 역시 수적으로 많았습니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실험영화의 성취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전반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 주었고, 내용과 형식 또한 간략하게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의 경우, 세계를 보고 느끼는 방식으로서 매체 자체에 대한 탐구와 질문을 중심에 둔 작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기존의 텍스트를 재배열하거나 재해석하며 독창적인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경향과 함께, 나 자신과 세상을 향해 카메라를 열어 두고 기록하고자 하는 작품들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많은 기준과 상식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시대에, 어제와는 다른 오늘에 발 딛고 서서 신중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예민하게 현재와 미래를 헤아리는 일이 독립영화의 과제라고 믿습니다. 그러한 고민을 각자의 방식으로 끌어안은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소중한 영화를 만들어 주신 감독, 배우, 스태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만나고 대화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0 본선 단편경쟁 부문 예심위원 (가나다순)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중현(영화감독 <이월>)
손시내(영화평론가)
안보영(프로듀서)
이원우(영화감독 <그곳, 날씨는>)
허남웅(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