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0 본선 단편경쟁 심사평

 

2020년 인류가 맞이한 COVID19라는 유례없는 절망의 챕터 속에서 극장 존폐 위기의 그림자까지 드리워졌지만, 서울독립영화제는 역대 최다 공모라는 희망의 불꽃을 보았습니다. 거대 자본의 지지를 받는 영화들은 진입 벽이 높아지고 움츠러들게 된 서글픈 시대의 가운데, 삶과 사람과 인생을 낮은 목소리로 조명하는 독립영화들은 더 단단하고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또한 경쟁부문에 오른 26편의 작품들 중 23편이 여성 감독들의 작품이었다는 것 또한 어제와 다른 세계, 그 또 다른 시작을 목도하는 듯합니다. 영화를 사랑하고 내일을 꿈꾸는 여러분이 있기에 극장은 우리에게서 쉬 멀어지지 않을 겁니다. 영화는 영원할 겁니다. 
 
올해의 대상은 이나연, 조민재 감독의 <실>입니다. 서울의 어딘가,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창신동 봉제 골목에서 옷 만드는 노동을 해 온 여성들과 그들의 세상을 조명하는 방식, 그 숭고함을 애정 어린 손길로 어루만지는 시선에 주목하였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피사체에 느끼는 창작자의 애정이 어떤 경로와 어떠한 원리로 무형의 회로를 타고 흘러 들어가 관객의 혈관에 온기를 전하고 심장을 관통하게 하는지, 영화를 만드는 우리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 작품 속 세월을 관통하는 희노애락의 풍파, 일상의 눅진한 흔적들이 켜켜이 녹아든 작업실과 그녀들을 29분 남짓한 시간 속에 담아내는 방식은 관찰과 애정어린 개입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제3의 눈으로 바라보고 조명하고 함께하는 듯한 새롭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올해의 최우수 작품상은 서예향 감독의 <가양7단지>입니다. 가양동의 영구임대 아파트단지에서 수급자,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어머니, 노인들이 모여 사람 구경을 한다는 벤치 설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 그리고 거주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와 외부의 시선을 그립니다. 과거 소외받은 계층을 상징하던 산동네/달동네라는 공간이 현대의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의 공간 속에서 재현될 때 묘한 기시감과 이질감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계급의 서늘한 명함과 부조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올해의 우수 작품상은 박지연 감독의 <유령들>입니다.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세상 밖으로 툭 내던져진 어느 남녀의 모습으로 시작한 영화는, 그들을 둘러싼 기묘한 이미지와 그 변주에 집중합니다. 현실적인 바탕 위에서 펼쳐지는 지극히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은, 인간 존재가 가질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공허함을 절묘하게 드러냅니다. 점점 길어지는 러닝 타임과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어가는 단편영화의 경향 속에서, 1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미지와 사운드의 힘만으로 삶의 미묘한 본질을 포착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올해 수상하신 모든 감독과 배우와 스태프분들께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영화를 출품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0 본선 단편경쟁 심사위원 일동
류현경 (배우, 영화감독)
민용근 (영화감독)
이지원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