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0 새로운선택 심사평

 

서울독립영화제2020 새로운선택 부문에 선정된 15편의 단편과 7편의 장편을 보며 창작에 있어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 영감을 선사하는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산업적인 속도에서 쉬이 포착하기 어려운 감정들, 구체적인 삶에서 출발해 새롭게 그려지는 여성 인물들, 영화 언어를 갱신하려는 실험적인 시도를 스크린에서 마주하는 것이 고전을 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들어 영화관을 예전만큼 찾지 못했던 관객의 입장에서, 좋은 영화들을 동료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는 일의 의미를 새삼 느끼기도 했습니다. 스크린 안팎에서 소중한 영화적인 체험을 선사해 주신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에게 존경과 감사를 바칩니다. 
 
영화를 만드는 동료로서 저희 세 명이 함께 마음을 모아 응원하는 두 작품은 <최선의 삶>과 <7011>이었습니다. 저희는 이 두 작품을 새로운선택 상으로 선정하고자 합니다.
 
이우정 감독님의 <최선의 삶>은 연출, 촬영, 미술, 연기, 음악, 믹싱 등 모든 파트의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친구로 나오는 세 명의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아 영화의 세계가 진짜같이 느껴져서 쉽게 이야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비현실적으로 묘사되고 소비되던 소녀 시절이 아닌 방황하고 거친 소녀 시절을 보는 것만으로 카타르시스가 있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이 영화가 어디를 향해 달려왔는지 이해시키며 인간은 오직 관계 속에서만 성장하거나 망가진다는 사실이 떠올라 단순히 이야기가 이 시절에만 머무르지 않고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이 되어 깊은 울림을 남겨주었습니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첫 장편을 멋지게 완성해 낸 이우정 감독님의 앞으로의 작품들도 기다리겠습니다.
 
이상민 감독님의 <7011>은 이제는 곁에 없는 친구가 남긴 흔적들로부터 출발한 에세이 영화입니다. 친구가 자주 타고 다니던 버스의 번호를 제목으로 한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최근에 본 어떤 영화보다도 유쾌하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감독의 목소리를 경유해 길 위의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의 감각이 느껴지고, 마지막에는 사라진 친구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과 묵직한 슬픔이 자리 잡는 놀라운 영화입니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기쁜 마음으로 이상민 감독님의 새로운 시선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2020년 서울독립영화제의 풍경은 다소 낯설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가 관객이 만나는 일은 늘 기적 같은 일이라 생각했지만, 코로나 시대에 진입한 올해에는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이 낯선 시간의 혼란을 뚫고 작품을 스크린에 선보이신 제작진들, 극장 상영을 위해 고군분투한 영화제 스태프들, 코로나를 무릅쓰고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함께하면서, 만남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알았던 영화의 정의는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화라는 핑계로 또다시 함께 만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0 새로운선택 심사위원 일동
강상우(영화감독)
임대형(영화감독)
전고운(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