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 초이스’는 기존의 특별 초청 부문의 변화한 명칭입니다. 해당 부문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무엇보다 축제의 의미를 강조하려는 서울독립영화제 2020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올해는 유례없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로 인해 많은 영화가 극장에서 관람객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오프라인 상영과 관람의 경험이 더욱더 귀해진 이 시기에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며 호흡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축제 그 자체일 것입니다.
페스티벌 초이스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22편입니다. 과거에 비해 많아진 편수입니다. 상영관에서의 관람에 목말라 했을 관객을 위한 배려의 차원입니다. 단순히 편수만 늘린 게 아니라 그만큼 화제가 된 작품도 많고 장르도 다양하여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양성은 곧 극 중 관계를 묻는 방식의 천차만별한 개성을 말합니다. <이주선>과 <바다가 보인다>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인연을 붙들어 매려는 절실한 마음을 각각 현실적인 SF와 묵묵한 드라마로 접근합니다. 결혼이 소재인 <어제 내린 비>와 교육 현장이 배경인 <김현주>는 속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갈등에 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바람 어디서 부는지>는 영화에 관한 영화로 현실과 환상이 혼재한 양상에서 아픔과 치유의 관계를 고찰합니다.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한 관계의 세계는 극영화와는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호랑이와 소>와 <나와 승자>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중심에 두면서 한 편은 다큐멘터리로, 또 한 편은 잔잔한 감동의 드라마로 마음에 따뜻한 파문을 일으킵니다. <민서와 할아버지>는 사연이 담긴 도구를 통해 화해를 모색하고 <함께 살개>는 인간과 반려견이 함께하는 삶의 의미를 묻습니다. <미믹>과 <우주의 끝>은 각각 재치 만점의 설정과 독창적인 이미지의 구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올 한 해 화제가 된 영화와 인물의 단편들도 페스티벌 초이스 부문의 목록을 가득 채웁니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은 코믹과 공포를 결합한 드라마로 2020년을 대표할 만한 단편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공민정과 문혜인 배우의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와 찰진 생활 연기의 달인 김재화 배우가 출연한 <중성화>도 팬들이라면 놓치기 힘든 작품입니다. 또 다른 영역에 도전하는 익숙한 이름들도 있습니다. 안재홍 배우는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로, 김꽃비 배우는 <캠핑을 좋아하세요>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김현민은 <파란>으로 연출 데뷔하였습니다. 장형윤 감독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극영화 <무협은 이제 관뒀어>로 또 다른 연출자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마지막 손님>은 홍상수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했던 감독이 홍상수 유니버스를 확장한 작품입니다.
개성의 결이 각기 다른 실험 영화들도 있습니다. <파란나라>는 한국의 노동 현실과 관련한 발칙한 상상이 재미를 줍니다. <건설 유니버스의 어떤 오류>는 한국 도시 건설의 난맥상을 파편화된 이미지로, <검은 옷을 입지 않았습니까?>는 구별이 쉽지 않은 검은 물성으로 지금의 세상을 바라봅니다. 정통 드라마에서 장르를 뒤섞은 경계 너머의 영화까지,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이의 작품부터, 기존의 재능에 깊이를 더한 이름까지, 무엇하나 예사롭지 않은 페스티벌 초이스의 작품들로 축제의 분위기를 마음껏 즐겨보세요.
서울독립영화제2020 프로그램위원회